삼성전자·SK하이닉스, 이중 악재

2025-09-02 13:00:02 게재

미국 규제·알리바바 칩 개발 충격 … 증권가 "장기적 투자 매력 유효"

사진에 SK하이닉스 로고와 컴퓨터 메인보드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반 약세를 보였다. 1일 주가는 각각 3%, 4.8% 떨어졌다. 미국 정부의 대중 규제 강화와 중국 알리바바의 인공지능(AI) 칩 개발 소식이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8월 29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명단에서 제외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앞으로 중국 공장에 장비를 반입할 때마다 미국 정부의 개별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하며, 실제 적용까지는 120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블룸버그는 이번 조치가 장기적으로 중국 내 생산 축소와 국내 투자 확대를 촉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이번 결정은 장기적인 산업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VEU’ 제도는 신뢰할 수 있는 해외 기업에 대해 별도 허가 없이 첨단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한 예외 규정이었지만, 두 회사가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중국 내 첨단 공정 확대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업계에서는 이로 인해 생산 효율성 저하와 매출 압박이 발생할 수 있으나, 동시에 한국 내 투자 확대를 앞당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조치로 종료되는 면제는 2023년 조 바이든 미국 전 대통령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 공장을 유지·확장할 수 있도록 장비 반입을 허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미국은 첨단 장비의 대중 수출을 전면 금지하면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사실상 무기한 면제를 부여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뒤집으면서 중국 사업 불확실성이 다시 커졌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함께 애플 아이폰부터 엔비디아 AI 서버까지 대부분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메모리를 공급하고 있다. 그동안은 VEU 제도를 통해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장비를 중국 공장에 반입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120일 유예기간이 끝난 뒤 개별 면허를 신청해야 한다. 미국 연방관보는 기업들이 면허를 신청할 수 있다고 명시했지만, 심사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이번 조치에 대해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SK하이닉스는 “한미 양국 정부와 긴밀히 소통해 사업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8월 29일 알리바바가 자체 AI 추론용 칩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CNBC도 같은 날 알리바바가 향후 3년간 3800억 위안(약 74조원)을 AI에 투자하고, 새 칩을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만 알리바바 칩은 단순 추론에는 활용될 수 있으나,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는 학습 단계에서는 여전히 엔비디아 칩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또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생태계 의존도가 높아 중국산 칩만으로는 독자적인 AI 산업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어 다른 외신은 엔비디아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AI 반도체 공급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의 자립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구조적 현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크게 불리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비디아가 AI 학습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유지한다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을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AI 학습용 칩은 막대한 메모리 대역폭을 필요로 하며, 양사는 HBM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권을 지키고 있다.

실제 지난 8월 29일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3.34% 하락했고,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도 3.15% 떨어졌다.

그러나 증권가는 한국 반도체주의 중장기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신규 라인과 핵심 공정은 대부분 국내에 집중돼 있고, 중국 공장은 현상 유지에 중점을 두고 있어 VEU 철회로 인한 단기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알리바바의 칩 개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기술 자립은 요원하며, 엔비디아에 의존이 이어지는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공급망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는 장기 투자자들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해석될 수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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