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조용히 보급되는 안면인식 기술
‘보안과 편의’ 명분 … 르몽드 “중국 등 아시아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도 점차 일반화”
“공항에 도착해 탑승게이트에 도달하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프랑스 기업 ‘이데미아 퍼블릭 시큐리티’ 기술이사 뱅상 부아투(Vincent Bouatou)는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선 여권이나 탑승권을 보여주지 않고도 신속하게 비행기에 오를 수 있다고 자랑했다. 홍채인식과 안면인식 덕분이다.
부아투 이사는 “우리가 창이공항이 해낸 일은 세계 어느 곳과도 비교하기 어렵다”며 자사의 전문성을 뽐냈다. 싱가포르에서 이데미아의 안면인식 사업 확장 가능성은 높다. 그는 “매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오토바이로 오가는 통근자가 굉장히 많다”며 “오토바이 운전자는 지문인식을 위해 장갑을 벗는 데만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2일 “이같은 변화는 싱가포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중국은 물론 걸프국가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라며 “공항과 대중교통 국경관리 범죄수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안면인식은 수년 사이 전세계적으로 점차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 전망도 이를 반영한다. 일본 파나소닉과 NEC, 프랑스 방산기업 탈레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눈에 띄지 않게 안면인식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르몽드가 여러 컨설팅업체의 추산을 취합한 바에 따르면 안면인식 시장은 올해 약 80억달러에서 2030년 180억달러(약 25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장단점은 뚜렷하다. 얼굴 스캔은 지문 채취나 홍채 인코딩보다 이동 중에 더 매끄럽고 편리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하지만 단점도 확연하다. 프랑스 데이터보호당국인 ‘정보자유국가위원회(CNIL)’ 법률지원국장 토마 다티외는 “얼굴은 가장 민감한 생체정보다. 신용카드를 도난당하면 은행에서 새 비밀번호를 발급해 줄 수 있지만, 생체신원이 유출되면 얼굴을 바꿀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얼굴은 공공장소에서 쉽게 추적될 수 있다. 최악의 사례로는 거리 곳곳에 안면인식을 폭넓게 적용한 중국의 사회통제 시스템이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영국 등 서방국가에서도 나이트클럽 출구나 슈퍼마켓 등으로 안면인식 기술이 점차 보급되고 있다.
‘파급효과’ 가능성 지금까지 유럽연합(EU)은 이 분야에 어느 정도 방어막을 쳐놨다.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과 2024년 발효된 AI법 같은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국가안보나 국경통제, 국가별 주요 정책 등 맥락에서는 예외가 적용된다. 대표적으로 올해 3월 헝가리 의회는 법으로 금지된 성소수자 퍼레이드의 주최자나 참가자들을 식별하기 위해 안면인식 기술 사용을 허용했다.
공항은 정부 권한과 민간 영역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현재 유럽에서 안면인식이 허용되는 몇 안되는 장소다. 다만 다른 대륙과 달리 유럽 공항에서는 안면인식 사용범위가 신원확인과 탑승 절차 간소화로 제한돼 있다. 유럽데이터보호이사회(EDPB) 이사장 아누 탈루스는 “안면인식 시스템이 획득한 생체정보를 중앙집중화해서는 안된다”며 “이 시스템이 오용되면 사기나 신원도용 같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이유로 일부 국가는 안면인식 시범사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일시적 조치에 그칠 수 있다. 유럽위원회는 지난해 10월 EU 역내에서 승객이 여권·신분증정보와 얼굴 사진을 모바일 기기에 저장할 수 있는 ‘디지털 여행 애플리케이션’ 도입을 제안했다. ‘디지털인권단체(EDR)’ 네트워크의 정책간부 엘라 야쿠보브스카는 “그 제안은 모든 여행자의 얼굴 데이터 등 27개의 새로운 생체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겠다는 의미”라며 “유럽에서는 전례 없는 시도다. 데이터 해킹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CNIL 다티외 국장은 “안면인식을 점차 용인하게 되면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려는 유혹이 커진다”며 ‘파급효과’를 경고했다. 프랑스 기업 탈레스의 사이버보안·디지털 아이덴티티 기술이사 베누아 주프레는 “철도와 버스, 여객선 터미널처럼 공공안전 이슈가 있는 공간으로 신원확인을 확대하는 방안을 상상할 수 있다”며 “우리가 현재 진출을 검토 중인 사안”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정부도 긍정적이다. 법무부는 올해 5월 공공장소와 공항에 안면인식을 도입하기 위한 실무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현재는 실시간으로 특정인을 식별·추적하는 것이 금지돼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한 법제화 틀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제랄드 다르마냉 법무장관은 X(옛 트위터)에 “안면인식 기술이 치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방어막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프랑스는 “한때 ‘레드라인’으로 여겨졌던 안면인식 기술이 이제는 정부 고위급 인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파리올림픽의 경험
2024 파리올림픽·패럴림픽 기간 ‘알고리즘 기반 영상감시(VSA)’가 허용됐다. 증강현실 카메라나 드론으로 수집한 영상을 자동으로 분석해 ‘의심스러운’ 상황을 경고하는 소프트웨어 기반 프로그램이다. CNIL은 2022년 VSA 시장 규모를 17억유로(약 2조8000억원)로 추산했다.
프랑스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2027년까지 연장하려 했다. 하지만 4월 헌법위원회가 절차적 사유로 이를 기각했다. 프랑스정부는 다시 시도 중이다. 2030 프랑스 알프스 동계올림픽 준비를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VSA 프로그램 연장법안을 마련했다. 지난 6월 24일 프랑스 상원에서 통과됐다.
프랑스 사회학자 아시아 위르트는 “VSA는 안면인식과 동일하지는 않다. 하지만 거리에서 사람을 추적할 수 있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며 “특정인을 식별하는 건 얼굴만이 아니다. 옷의 색깔이나 걸음걸이로도 얼마든지 특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미르틸 픽코도는 “현재 지방자치단체와 치안당국, 민간기업이 이런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불명확성 자체가 또 다른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탐사매체 ‘디스클로즈’는 2023년 11월 캐논 자회사이자 이스라엘 기업인 ‘브리프캠(BriefCam)’의 ‘비디오 시놉시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국가경찰이 특정인들을 추적했다고 보도했다.
디지털인권단체 ‘라 카드라튀르 뒤 네’의 법률전문가 노에미 르방은 “브리프캠 같은 기업들은 자사의 알고리즘 영상감시 소프트웨어를 프랑스 여러 도시들에 계속 판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르노블 행정법원은 올해 1월 모이랑시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 단체의 손을 들어주며 “많은 도시가 사용하는 브리프캠 영상감시 소프트웨어는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은밀히 커지는 사회적 수용성
안면인식 기술이 발전 중이라 해도 아직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영국 시민자유단체 ‘빅브라더 워치’는 2023년 보고서에서 경찰이 사용하는 안면인식 기술 사례 3315건 중 정확한 것은 340건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2024 파리 올림픽 기간 VSA 성과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국영철도 SNCF가 받은 소프트웨어 경고알람 270건 중 62%가 오경보였고 의미 있는 것으로 판단된 것은 21건에 그쳤다.
프랑스 경영대학원 ‘미네스 텔레콤(IMT)’ 부교수 플로랑 카스타니뇨는 “기업들은 알고리즘을 조정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며 “실생활에서는 인파가 조금만 많아도 알고리즘이 쉽게 교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 파리 올림픽·패럴림픽에서 VSA 운용기업으로 선정된 업체들은 이를 계기로 자사 데이터베이스를 확장할 수 있었다. 데이터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탈레스의 주프레 기술이사는 “EU가 AI 선도 대륙으로 자리잡아 중국·미국과 경쟁하려면 데이터베이스 문제를 책임 있게 다뤄야 한다”며 “유럽 시민들로부터 동의를 받아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을 키우려면 민간 부문에 더 많은 재량권을 줘야 한다. 사회학자 위르트는 “은행계좌나 휴대전화 해킹을 막기 위한 신원인증 애플리케이션은 상대적으로 반대가 적어 생체인식 기술 도입이 더 쉽다”며 “이는 기업의 혁신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알고리즘 학습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프랑스 AI 영상분석 스타트업 ‘비데틱스(Videtics)’ 대표 알랑 페르바크는 “우리 고객사에는 자사 부지 출입을 보호하려는 비올리아·수에즈 같은 산업재기업, 고객 동선을 더 잘 파악하려는 쇼핑몰 등이 있다”며 “지방자치단체 고객들에겐 드나드는 사람과 자동차, 선박 등을 ‘카운팅’하는 경우로만 서비스를 제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정부기구들은 이것만으로도 이미 안면인식 기술의 확산 봇물이 터졌다고 비판한다.
르몽드는 “보안과 편의라는 명분 아래 안면인식은 인력파견업계나 우버기사들 사이에서 신원도용 방지 수단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 또 합법-불법 경계선에서 입사지원자 감정을 분석하는 채용 소프트웨어에 은밀히 통합되기도 한다”며 “일상에서는 이미 스마트폰이나 데스크톱을 여는 용도로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안면인식 기술은 사회적 수용성을 은밀히 키워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