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공룡’ 기재부 해체, 갈 길 험난하다

2025-09-08 13:00:02 게재

이재명정부가 7일 기획재정부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쪼개기로 했다. 이명박정부가 2008년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합쳐 기획재정부를 만든 지 18년만의 원대복귀다.

해방 이후 박정희정권 때까지는 재정과 예산 주무부처를 분리해 상호견제하도록 하는 게 경제정책 운영의 기본 공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김영삼정권이 들어서 1994년 ‘효율성’을 명분으로 재무부와 기획예산처를 합쳐 재정경제원이란 ‘거대 공룡’을 만들었다. 재경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세했고 심지어 재경원 수장이 ‘대통령’까지 꿈꿨을 정도였다. 하지만 1997년 IMF사태가 터지면서 국가를 파산상태로 몰아간 재경원의 무능이 백일하에 드러났고, 김대중정권은 책임을 물어 1998년 재경원을 다시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쪼갰다.

기획예산처, 확장재정의 첨병 될 가능성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부활하게 된 기획예산처가 이재명정부가 천명한 ‘확장 재정’의 첨병이 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야당 시절에 자신의 기본소득 등에 제동을 걸어온 기재부에 울분을 토해왔다. 이같은 분노는 결국 기재부 쪼개기로 이어졌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기로 한 기획예산처는 확장재정을 주도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노무현정권 때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냈던 고 장승우 전 장관은 장관직 경질 후 사석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로한 바 있다. “예산처 장관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정치논리 선거논리에 따른 거대 토목예산 낭비다. 현장에 가보면 기존의 도로로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인데 여당이 옆에 제2의 도로를 놓겠다고 했다. 온갖 핑계를 대 설계를 바꾸면서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곤 한다. 토목업자와 토착 정치인의 배만 불리는 것이다. 그런만큼 불요불급한 토목 예산은 시작 단계에서 원천봉쇄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여당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고 결국 옷을 벗게 되더라.” 국무총리실 산하로 가게 된 기획예산처가 과연 여당 등의 선거논리에 맞서 이같은 견제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기획재정부는 지난 3일 ‘제3차 장기재정전망’(2025~2065)을 발표했다. 이는 국가재정법에 의거해 5년마다 발표해야 하는 수치로, 지난 2015년과 2020년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 발표다. 기재부는 인구(중위) 및 성장(중립) 시나리오를 중간값으로 한 206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156.3%였다. 이는 현재 0.65명인 합계출산율이 2065년에는 1.08명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희망사항’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보다 앞서 10년 뒤에는 ‘비(非)기축통화국의 상한선’으로 여겨지는 60%선을 넘어 70%를 돌파하면서 신용등급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됐다.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기재부가 내놓은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 재정지출(728조원)은 올해 본예산보다 8.1% 늘어난 뒤 2029년까지 증가율이 매년 4~5%로 잡혀 있다. 이렇게 되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올해 49.1%에서 내년 51.6%로 50%를 넘어선 뒤 4년 뒤인 2029년에는 58.0%가 될 것으로 예측됐고, 2030년에는 60%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올해 0%대에 이어 내년에도 1%대 저성장이 예상되고 6.3 지방선거까지 있어 경기부양 추경 편성이 확실시 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관세협상에 따른 막대한 대미투자와 방위비 증액, 미국무기 구입 등이 예상되는만큼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일본과의 관세협상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투자분야를 지목하면 ‘45일내’ 반드시 투자하도록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미국은 우리나라에도 동일한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석유화학 철강 등 경쟁력 약화 업종에 대한 대대적 구조조정도 예고돼 있어 공적자금 투입 가능성도 크다.

예고된 저성장에 증폭될 재정적자까지 험난한 시험 예고

정부도 올해 토목을 포함해 기존사업 ‘27조원’을 구조조정하기로 하는 등, 재정건전성 악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부심하는 분위기다. 내년까지 ‘마중물’을 부어 내수를 살리고 산업의 경쟁력을 회복시키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고 선순환 고리로 복원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최근 반등하기는 했으나 앞서 이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했을 때 여권에서도 “허니문은 끝났다. 이제는 경제”라는 신음이 터져나왔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험난한 시험이 시작된 셈이다.

박태견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