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속가능한 수출, 공급망 전과정 관리에서 답 얻어야

2025-09-09 13:00:04 게재

세계적으로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둔 무역 규범이 강화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23년 ‘EU 배터리 규정’을 발효하고, 2024년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배터리 산업을 대상으로 한 이 규제는 원료 채굴 제조 유통 재활용 등 전과정에서 탄소발자국 산정과 검증을 의무화했다. 2025년 전기차 배터리를 시작으로 산업용 충전식 배터리, 경량 운송수단 배터리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이는 단순한 제품 규제가 아니라, 공급망 전체의 저탄소화와 투명성을 요구하는 산업 구조 개편의 신호탄이다.

또한 디지털 제품 여권 제도가 도입돼 2027년부터 전기차와 산업용 배터리에 적용될 예정이다. 이 여권에는 제조사 정보 성 화학적 조성 재활용 비율 탄소발자국 수치가 포함되며, 소비자와 규제 당국이 이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 보고에 그치지 않고, 제품의 설계부터 재활용까지 전 생애주기를 포괄하는 관리 역량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흐름은 배터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통해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수출에도 탄소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했다. 미국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전기차 세액공제 조건에 공급망 내 광물의 원산지 요건을 포함시켰다. 한 분석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은 전동화 과정에서 배터리 외에도 반도체 희토류 철강 등 광범위한 공급망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ESG 평가 강화, 인권·노동 기준 준수, 재활용 소재 사용 비율 확대 등도 사실상 시장 진입 요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환경과 지속가능성 중심의 무역규범 강화

이미 현장에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공급망 전반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데이터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뿐 아니라 전장부품과 타이어까지 탄소배출량 산정 자료와 검증 증빙을 요청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공급망의 2차 협력사까지 보고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온실가스 기여도가 높은 부품과 소재에 대해서는 반드시 현장기반 데이터를 제출하도록 요구될 예정이다. 부품업계는 재활용 원료 사용 확대 계획과 구체적 감축 목표까지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전자 의료기기 건설 자재 분야에서도 탄소발자국 제출 요구가 늘어나고 있어 사실상 전 산업으로 규제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산업계가 취할 전략은 명확하다. 첫째, 기업 간 협력과 표준화가 필수적이다. 둘째, 데이터 기반 관리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 공정별 탄소배출량을 실시간으로 측정·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체계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엄격한 규제를 통과하기 어렵다. 셋째, 정부와 지원기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위와 같은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우리 기업들은 비재무 정보까지 보고해야 하는데, 이를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대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가 차원의 통합 플랫폼 구축과 표준화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환경규제, 수출위한 전제조건

국제환경규제는 이제 선택이 아닌 수출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우리 산업계가 이번 도전을 위기보다 기회로 인식하고, 저탄소 기술 혁신과 공급망 관리 역량을 선제적으로 강화한다면, 이는 곧 글로벌 경쟁우위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산업계 전체가 함께 준비해야 할 때다. 지속가능한 수출은 공급망 전과정의 투명성과 신뢰 확보에서 시작된다.

김진호 한국생산성기술연구원국제환경규제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