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 4.5일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난 8월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에는 대선공약이었던 ‘주 4.5일제’ 용어 대신, 포괄적인 ‘노동시간 단축’이 제시되었다. 노란봉투법, 상법개정안 등의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노동시간 개편은 가능한 부분부터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관련 법령의 개정, 예산확보의 절차를 비롯해, 무엇보다 국민과의 공감대,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주 4.5일제’ 는 근로시간 단축의 의미를 넘어, 국민의 삶의 방식과 사회시스템을 바꾸는 혁신적인 패러다임 시프트가 될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정책은 “더 많이 일해야 성장한다”는 사고에서 ‘노동의 질적 성장 중심’의 전환을 의미한다. 또한 ‘GDP 중심의 성장’ 논리에서 ‘국민의 행복과 건강, 균형 잡힌 삶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가족 돌봄과 지역사회 참여 같은 사회적 가치 창출’ 또한 중요한 사회 성장 동력으로 재정립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민이 일에 종속되는 삶이 아니라, 삶과 사회의 주체로 살아가야한다는 현 정부의 비전을 구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시간 단축이 주인됨의 경험과 역량으로 이어지도록 공공인프라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점검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사회시스템 전환 준비돼야
근로시간 단축이 궁극적으로 국민이 주인되는 삶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공공인프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 준비가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도서관을 주목해야한다. 우리나라에 도서관은 약 2만2000여개가 있다. 학교 대학 공공 전문 병영 장애인도서관은 전국을, 전계층을, 전분야를 모두 포용한다.
단지 시설의 파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은 세상을 읽어내는 힘,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역량, 생각과 경험이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일상에서 주인됨의 경험을 쌓아가는 곳이다. 또한 민주주의 회복, 리터러시 역량 강화, 풀뿌리 지역경제 활성화, 자치분권, 기후위기 대응 등 오늘날 정부가 추진해야할 핵심 국정과제들 모두 도서관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도서관은 국가정책을 국민의 일상과 연결하고, 국민이 주인되는 나라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공공인프라이기 때문이다.
2004년 주 5일제 시행 이후 도서관 이용자 수는 이전에 비해 약 2배 가까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늘어나는 여가시간에 누구나 경제 부담 없이 이용 가능한 곳이자, 개인의 다양한 필요가 문턱 없이 펼쳐지는 공공성의 대표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또 다시 도서관 이용자수의 증가를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현재 도서관은 늘어날 이용 수요를 감당하기에 시설과 프로그램, 인력 모든 면에서 준비가 부족하다.
정부는 도서관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제적 격차가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민의 늘어난 여가시간이 진정한 성장 동력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AI 기술이 단순한 장비 도입에만 머물지 않고, 데이터 관리 체계의 정비, 업무 프로세스 혁신 등에 투입됨으로써 도서관이 첨단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시민 경험을 창출하는 실험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도서관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투자 필요
이것이야말로 주 4.5일제가 근로시간 단축을 넘어 ‘국민이 주인되는 나라’를 실현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첫 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