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100일…국정 정상화-외교 최전선-미래의 씨앗
불법계엄 후 뒷수습 ‘속도전’…민생쿠폰 경제 마중물 정책
관세협상 이어 노동자 구금 등 외교 시험대…AI 등 미래동력 제시
‘사면’ 후폭풍 넘기고 60%대 지지율…협치·개혁 2라운드 과제
“임기 마친 후 무엇으로 기억될지 ‘대통령의 의제’ 고민할 때”
불법 계엄이 남긴 상처 치유, 나아가 회복과 성장을 핵심기조로 출범한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11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내란과 탄핵 등 혼돈의 끝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 대통령은 선거 이튿날인 6월 4일 곧바로 임기를 시작했다.
국내는 물론 국제 정세까지 모두 백척간두에 선 듯한 긴박했던 시간 동안 이재명정부가 숨가쁘게 달려온 점은 확실해 보인다. 내일신문은 이재명정부의 100일을 ‘국정 정상화’ ‘외교 최전선’ ‘미래 향한 씨앗’ 등 3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국정 정상화 = 소수의 참모들과 함께 용산 대통령실에 들어선 이 대통령은 가장 먼저 국정 정상화를 향한 속도전을 벌였다. 12.3 비상계엄 이후 대선 때까지 6개월 간의 권력 공백 속에서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경제심리 위축, 대외적인 평판 리스크 확대 등 나라 꼴은 말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모두 이룬 나라라는 한국의 자부심이 꺾일 지경이었다.
이 대통령은 1호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임기 첫날부터 야근을 하며 정상화의 신호탄을 쐈다. 경제 살리기가 1순위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민생소비쿠폰 지급 등이 핵심인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확장재정 기조를 명확히 한 내년도 예산안 편성 등으로 경제 살리기 마중물을 아낌없이 붓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국정 정상화의 한 날개가 경제 살리기라면, 또다른 날개는 내란 종식이다. 이 대통령은 전 정부에서 벌어졌던 내란은 물론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했던 주요 사건들을 수사할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을 출범시키며 신속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에 나섰다.
박상병 정치 평론가는 “이 대통령 100일 간의 최대 성과는 헌정질서를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정치를 정상화시켰다는 점”이라면서 “쉬워 보일지 몰라도 가장 어렵고 중요한 과제였는데 최대한 신속하게 회복시켰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외교 최전선 = 내치에서 어느 정도 정상화의 기틀을 잡았다면 그 다음 과제는 외교였다. 100일간 새 정부가 직면한 외교 과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가속화된 국제통상질서의 불확실성, 어느 때보다도 긴장도가 높아진 남북관계 등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 시험대는 취임 12일 만에 외교무대 데뷔 자리가 된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였다. 여기서 이 대통령은 6개월 간의 정상외교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민주한국’의 귀환을 알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 다음은 가장 큰 도전과제는 대미 관세협상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7월 31일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냈다. 또 지난 달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도 큰 돌발상황 없이 선방했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현재는 한미간 이견으로 후속 세부 협상이 교착된 상태라는 지적도 있지만 굵직한 외교 국면을 지나면서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실용외교’는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로 정착되는 분위기다.
그 외에도 미국에 앞서 일본에 들러 두번째 한일정상회담을 갖고 한일간 셔틀외교 복원, 정상 간 공동발표문 공개 등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박 평론가는 “외교와 통상 문제는 거의 취임과 동시에 닥쳐서 준비가 잘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내야 했는데 최소한 다른 나라 수준 정도는 해냈다”면서 “첫 단추치고는 괜찮았다고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 향한 씨앗 = 최근 들어 이 대통령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미래의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각 부처에선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R&D 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인 23조7000억원이다. 이 중 인공지능(AI) 분야 예산은 5조1000억원이다.
이 대통령도 인공지능(AI)의 중요성을 틈 날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국가 AI의 최상위 전략기구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으며 지난 8일 출범한 국가AI전략위원회의 위원장직을 직접 맡기도 했다.
100일 동안 그림자가 가장 짙었던 부분은 ‘인사’다. 정권 첫 낙마로 기록된 오광수 전 민정수석,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와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지명자의 연이은 낙마는 과연 인사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를 높였다. 9일 대통령실에 인사수석비서관직을 새로 마련하고 조성주 한국법령정보원장을 내정한 것은 그간의 우려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취임 69일째였던 8월 11일 이뤄진 조 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에 대한 특별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에 큰 타격을 주기도 했다.
민생 행보에 적극 나서며 다시 60%대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검찰개혁 등의 개혁 의제, 야당과의 협치 등은 과제로 남아 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타운홀 미팅, 국무회의 생중계 등을 하며 소통을 늘리거나 한미정상회담에서 잘 방어한 것 등을 생각해 보면 이 대통령의 100일은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아직은 대통령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분석했다.
최 소장은 “이 대통령이 가뭄, 산불 등 여러 가지 이슈를 제기했는데 이게 과연 대통령의 의제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면서 “모든 임기가 끝난 후 이재명정부의 성과로 남게 될 전략적 국정과제, 즉 대통령의 의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고 총평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