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대미 투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2025-09-11 13:00:00 게재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이었다.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한국인 300여명이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당국자들에 의해 무더기로 붙잡혔다. 단속반원들이 공장을 급습할 때 헬기까지 동원됐다고 한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분좋게 정상회담을 마친후 2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들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토록 미워하는 불법이민자도 아니었다. 다만 공장건설을 위해 파견된 인력이었다.

미국이 이른바 불법이민을 단속한다며 붙잡았던 중남미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이미 보아왔다. 우리 한국인도 그들처럼 야만적인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실제로 붙잡힌 한국인 일부가 수갑이나 케이블타이 등으로 묶이고 열악한 것으로 알려진 구금 시설에 갇히자 그 충격이 더 컸다.

미국 투자환경에 대한 의구심 불러일으킨 사건

이번 일이 벌어진 것은 비자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체포된 이들은 대부분 회의 참석이나 계약 등을 위한 비자인 B1 비자나 전자여행허가(ESTA)를 받고 현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년 공장 가동을 앞두고 장비 설치 등의 작업을 하는 하청업체 직원들이 많았다. 이들이 당장 ‘체류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활동’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한국 정부나 재계도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인력을 사전에 협의도 없이 무작정 붙잡아가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현대차 외 LG에너지솔루션의 이번 합작공장은 한국과 미국의 경제협력을 위한 상징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한국과 미국은 최근 관세협상과 정상회담 등을 통해 배터리 분야를 보함해 3500억달러 상당의 투자에 합의도 했다. 이같은 합의분위기를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미국도 투자하는 한국기업의 애로와 고충사항을 경청하고 덜어주는데 힘써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거꾸로 뒤통수를 친 것이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으로 붙잡혔던 한국노동자들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한 앙금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정부도 미국에 유감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런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비자 문제 등 근본적인 해결을 추진할 방침이다. 전문직 비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때부터 이미 꾸준히 요구해 왔다. 호주나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과 비교해도 현저히 불공평하다.

더욱이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면서 비자문호는 개방하지 않고 있으니 그야말로 부조리다. 이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미국에 대한 투자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가동중인 현지공장들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직원들의 미국 출장을 줄줄이 보류시켰다.

바로 이런 사정을 미국정부에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투자한 한국기업을 상대로 뒤통수 치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 투자받는 나라가 투자하는 나라의 기업을 상대로 ‘작전’을 벌이는 것은 동서고금에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그런 야비한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돈을 쏟아부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마도 상대가 미국이 아니고 다른 나라였다면 투자나 공장건설을 완전 중단하고 전면 철수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대는 초강대국임을 자랑하는 나라고, 시장규모가 무척이나 크다. 투자기업의 입장에서는 공장건설을 중단 또는 늦출 경우 적지 않은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감정적으로 가볍게 결정할 수는 없다.

사태 재발 방지 하기 위해 비자 문제 등 근본적인 해결을

그렇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대미투자 사업의 필요성 여부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대미투자를 조급하게 진행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는 것이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더라도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비자 문제에 대한 미국정부의 태도와 한국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를 봐가면서 천천히 결정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쉽게 말해 투자시기를 조절하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국기업의 존재가치를 확실히 부각시키고 미국이 더는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 유익할 것 같다. 한국이 예전의 한국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국내 기업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기업들에게도 미국의 투자환경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을 듯하다. 따라서 미국도 앞으로 외국기업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의구심부터 해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