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중대재해
반복되는 K-조선 중대재해, 마스가를 위협한다
지난해 조선소 사망사고 24건에 28명 숨져, 23명이 하청노동자 … 노동부·노조 “노동자를 산재예방 주체로”
“충분히 예측되는 뻔한 추락사고가 지금도 반복된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가깝다. 그것 하면 회사 망한다고 생각해야 된다. 남의 인생 통째로 망가뜨리고 그걸로 돈 벌겠다고 하면 말이 되나. 기본적으로 문화를 바꿔야 한다.”
“10월 1일부터는 사고가 안나더라도 예방조치를 안 한 것만으로도 바로 의법처리하도록 (하겠다).”
지난 9일 이재명 대통령이 중대재해와 추락사고가 줄어들 기미가 안보인다며 고용노동부 장관을 포함 관계 장관들에게 반복되는 중대재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최선을 다해서 연말까지 추락사고 줄이도록 하겠다”고 거듭 말했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재 사망사고자 수)을 지난해 기준 0.39에서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0.29까지 줄이겠다고 밝혔다.
끊이지 않는 K-조선 중대재해로 일터에서 우리나라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노동자까지 숨지고 생산까지 중단되면서 한·미 조선업 협력, 이른바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위협받고 있다.
3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H1안벽6064호 선미B데크 상부에서 워터백을 이용해 보조윈치 로드테스트(하중시험)를 하던 중 브라질 선주사 시험설비 감독관이 플랫폼이 붕괴되면서 허공에 매달려 있다가 낙하물에 맞아 바다로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화오션은 사고 다음날 오전 8시부터 낮 12시까지 4시간 동안 거제사업장 생산을 중단하고 특별 안전교육·점검을 실시했다. 오후 5시 40분부터 ‘사고발생 호선의 데크 상부 가장자리 및 건조 중인 호선에 설치된 윈치의 로드 테스트 작업 일체’를 중단하고 이를 5일 공시했다.
한화오션은 생산중단 사유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3조에 따른 중대재해 발생’을 적시했다. 생산을 중단한 선박의 계약금액은 1조948억원이다. 작업재개 일정은 미정이다.
◆마스가로 주목받는 K-조선, 안으로는 중대재해 계속 = 미국이 자국 해군함정을 포함한 선박의 건조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한국 조선산업에 협력을 요청하고, 한국은 미국의 조선산업 부흥을 위한 마스가 프로젝트를 미국과 합의하면서 세계가 한국 조선산업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조선산업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숙련공 양성 문제와 함께 반복되는 중대재해로 인해 지속가능성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에 따르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 중대재해로 분류한다.
노동부에 따르면 조선소 작업장 내 사고로 인한 노동자 사망자수는 2020년 17명에서 지난해 15명으로 크게 줄지 않았다. 사망자수는 2021년 12명, 2022년 11명, 2023년 9명으로 줄어들다가 지난해 다시 전년 대비 66.7% 늘었다. 올해는 6월까지 사고로 6명이 숨졌다.
반복되는 조선소 중대재해에 대해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관리체계가 서류상으로 만든 것은 맞는데 현장에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산업안전보건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 조선소의 안전관리는 ‘위험의 외주화’라고 지적했다. 선박건조 인력의 80%가 사내 협력업체에서 일하지만 협력업체들은 독자적인 안전보건 관리 능력이 취약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현 사무국장은 “중대재해가 난 현장에 조사를 나가보면 원청이 반복적으로 안전예산을 대규모 투자한다고 하지만 그 비용이 노동자들이 일하는데 적절한 인력이나 장비 시설개선에 쓰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규적 노동자보다 힘든 일을 하는 하청 노동자들은 작업조건도 열악하고 임금도 낮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더 장시간 일해야 한다”며 “그런 상태에서 안전보건 관리는 잘 안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업 인권침해대응 연대’가 집계한 지난해 조선소 사망사고 28명(뇌혈관질환 등 작업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나 원인불명도 포함) 중 원청 노동자 2명과 소속 불명 3명을 제외한 23명은 하청 노동자였다.
회사가 중대재해 처벌을 피하려고 화상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치료를 중단시키고 부당한 압력과 회유로 중대재해를 은폐한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노동조합과 회사의 갈등으로 비화하는 일도 있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HD현대중공업이 중대재해를 은폐하고 있다며 관련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골리앗크레인 8호기 고장수리 중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전기폭발로 2명의 노동자가 피부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노조는 “사고는 건조 중인 배의 진수가 임박한 가운데 제대로 된 표준작업과 위험성 평가가 무시된 채 고정된 생산일정에 따라 고전압의 활성 전기를 차단하지 않고 수리작업을 강요당하면서 발생한 중대성 재해”라며 “두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였다”고 지적했다.
HD현대중공업에서는 2024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3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 사고로 사망했다. 노조는 “회사 창립 이래 집계된 산재 사망자만 476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폭발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치료받도록 하지 않고 중대재해법 적용에 따른 처벌을 피하기 위해 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치료중단을 회유·협박해 산재요양을 종료시켰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은 재해를 당한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기 전에 울산대학병원에서 치료를 종결하고 현장으로 복귀한 뒤 공상휴가로 현재까지 19개월째 치료하고 있다.
◆작업장 안전대책 마련에 원·하청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어야 = 조선소 노동자들은 반복되는 산업재해와 중대재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업장 안전대책 마련에 노동자(노조)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금속노조는 10일 노동부 통영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화오션은 안전대책 마련에 노조 참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3일 선박에서 작업 중 플랫폼 붕괴로 선주사 감독관이 사망한 사고원인과 관련 무리한 작업공정 강행으로 발생한 것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사고가 난 테스트는 공정상 사외업체에서 테스트를 완료한 뒤 안벽으로 입고돼야 하지만 공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테스트가 진행됐다. 테스트를 위한 총중량은 312톤인데 280톤 하중에서 사고가 났다.
노조는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고 직후 선박 안 노동자들에게 대피명령이 내려졌지만 현장작업 중이던 4000여명이 대피하는 데만 1시간 30분 넘게 걸렸다.
노조는 “마침 점심시간이 다 돼 노동자들이 식사를 위해 이동을 시작한 시간이었기에 그정도지 한창 작업시간이었다면 대피 소요시간은 더 길었을 것”이라며 “사고가 폭발과 화재,대규모 붕괴 등 사고였다면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대형참사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노동부 통영지청의 사고대응도 문제로 지적됐다. 사고가 나자 통영지청은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현장에 맞지 않는 작업중지 범위를 지정해 2차 사고 위험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현장구조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노조가 작업중지 범위에 대해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사망한 브라질 감독관이 속한 브라질석유노동자연합도 성명을 통해 “노동자가 집을 떠나 일을 하다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사고조사의 투명성과 노조 대표의 참여를 강조했다.
금속노조도 사고원인 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며 △철저한 사고원인 조사를 통해 책임자 처벌 △건조 중인 선박 등에서 사고가 났을 때 노동자들의 안전한 대피 등 안전대책 마련 △안전대책 수립에 노조 참여 보장 등을 한화오션에 요구했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국장은 “인도일에 쫓긴 무리한 공정진행도 (중대재해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라며 “현장 노동자에게 안전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고 하청노조가 원청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게 보장하는 등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7월 29일 국무회의에서 “노동자를 산재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객체에서 산재예방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며 ‘산재예방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한 바 있다.
한남진 정연근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