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부실 커진 부동산신탁사… 당국 “소송 대비, 리스크 강화”
책임준공 사업장 손해배상 위험 직면
금감원, 간담회 열고 ‘위기 대응’ 당부
금융회사들이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에 대한 위험 관리를 강화하면서 부실 사업장 정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과 달리 책임준공형 사업장과 관련한 부동산신탁사들의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임준공기일이 경과한 사업장에 대한 금융기관의 손해배상(PF 원리금) 소송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부동산신탁사들의 소송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13개 부동산신탁사 재무·내부통제 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서재완 금감원 부원장보는 “부동산 경기 침체, 공사원가 상승 등으로 인한 건설사 위기가 부동산 신탁업계로 전이됨에 따라 책임준공 사업장 리스크 관리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상존한다”며 “책임준공 기일이 도과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소송 제기 등에 대비해 보수적 충당금 적립으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 부원장보는 또 “공정률 부진 사업장에 대해서는 사전적 관리를 통해 기한 내 준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충분한 유동성 확보를 통해 이상 징후 발생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위기 대응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부동산신탁사들은 2분기 134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토지신탁보수는 1157억원으로 전년 동기(1655억원) 대비 30% 감소했다.
금융업권 전체의 부동산금융 익스포져(위험노출액)는 2023년말 236조원에서 올해 3월말 198조7000억원으로 37조3000억원 감소했다. 하지만 부동산신탁사의 경우 같은 기간 신탁계정대여금 잔액이 3조원 증가하는 등 금융업권 전체와는 다른 흐름을 보였다.
신탁계정대여금은 신탁사가 사업비 조달 목적으로 신탁사 고유 계정에서 빌려주는 대여금을 말한다. 차입형 토지신탁이나 관리형 토지신탁에서 사업이 지연되거나 자금이 부족할 경우 투입되는데, 추후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부동산신탁사가 손실을 입게 된다.
올해 6월말 기준 부동산신탁사의 신탁계정대 잔액은 약 8조5000억원으로 신탁사 자기자본 5조6000억원의 약 1.5배 수준이다. 2023년말 4조8551억원에서 2배 가량 증가했다.
신탁계정대여금은 차입형 토지신탁의 경우 사업 진행 과정에서 투입되지만 책임준공형(책준형) 관리형 토지신탁의 경우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장에는 사용되지 않고, 시공사가 준공기한을 지키기 어려운 경우 투입된다. 2023년 12월 이후부터 신탁계정대여금 증가율은 책준형이 차입형 대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책준형은 시공사가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신탁회사가 의무를 대신하는 것을 말한다. 건설사 부실로 그 부담이 부동산신탁사로 넘어왔고 신탁사들이 준공 의무 이행을 위해 회사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책임준공 약정 기한을 이행하지 못한 PF 잔액이 늘고 있으며, 금융회사들이 책준형 사업장과 관련해 신탁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함에 따라 신탁사들의 부담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책임준공 기한을 준수하지 못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이미 투입된 신탁계정대여금 뿐만 아니라 PF대출 대지급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추후 부동산 회수 수준에 따라 신탁사 재무제표에 미칠 영향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부동산신탁사의 건전성과 함께 내부통제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가 업계와 논의해 오는 11월 ‘부동산신탁사 영업행위 모범규준’을 제정할 예정이다.
서 부원장보는 “지난해 테마검사 과정에서 부동산신탁사 임직원의 사익추구행위 등 내부통제 취약점이 다수 드러났다”며 “모범규준에서는 임직원의 일탈행위를 억제할 여러 내부통제 수단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각 회사가 모범규준 취지에 부합할 수 있도록 내규정비 등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장치를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개정 지배구조법에 따라 내년 7월까지 부동산신탁사는 책무구조도를 마련해 감독당국에 제출할 의무가 있다. 금감원은 부동산신탁사들이 ‘책무구조도 등 개정 지배구조법령 해설서’ 등을 참고해 사전 준비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부동산신탁사 임원들은 “손실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하고, 지속적으로 유동성을 관리하는 등 철저하게 리스크를 관리해 나가겠다”며 “금융투자협회와 함께 마련한 모범규준에 기초한 내규 정비 및 책무구조도 제출 준비도 차질 없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