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일본 취업빙하기 세대가 주는 교훈

2025-09-15 13:00:00 게재

최근 일본 정치권이 가장 뜨겁게 다루는 의제는 단연 ‘취업빙하기 세대’ 지원 문제다. 지난 4월 25일 이시바 총리가 직접 관계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6월 3일에는 ‘새로운 취업빙하기 세대 지원 프로그램의 기본 틀’을 발표했다. 총리직 사임을 앞두고도 이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일본정부가 얼마나 중대한 국가적 과제로 인식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취업빙하기 세대’는 버블경제 붕괴 이후 고용이 얼어붙었던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사회로 진입한 세대를 가리킨다. 흔히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며 일본 경제사에서 가장 불운한 세대로 꼽힌다. 이들은 제2차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대규모 인구집단이었지만, 기업은 버블 붕괴의 충격으로 신규 채용을 급격히 줄였다.

일본사회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로스트 제네레이션’

경쟁은 치열했으나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정규직 문이 좁아지자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 파견·계약직 등 비정규직은 임금수준이 낮고 근속에 따른 임금상승도 제한적이었다. 정규직 중심의 연공서열 체계와 비교하면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었다. 게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경기위기 때는 가장 먼저 해고대상이 되며 고용 불안의 중심에 놓였다. 그 결과 이 세대는 자산축적이 늦어 주택보유율이 낮았고,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되었다. 이는 곧 일본 사회의 저출산 심화로 이어졌다. 단순히 한 세대의 불운에 그치지 않고 인구구조와 경제체질 전반을 약화시키는 파급력을 낳은 것이다.

일본정부와 야당의 대책은 공통적으로 이들의 ‘노후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취업빙하기 세대는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이다. 정부는 세 가지 방향을 내세웠다. 첫째, 취업기회 확대와 처우 개선. 둘째, 지역사회 참여 확대. 셋째, 노후생활설계 지원이다. 입헌민주당은 ‘리스타트 정책’을 내놓아 돈(Money) 집(Home) 시간(Time)이라는 세 축에서 재출발을 돕겠다고 했다. 국민민주당은 정규직 채용 확대, 후생연금의 소급 납부, 최소보장연금 제도 도입, 안식년 제도 신설 등 다양한 방안을 제안했다. 이처럼 여야 모두가 경쟁적으로 해법을 모색하는 배경에는 이들의 문제가 곧 일본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이 세대의 인구비중이 크다는 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 진입기에서부터 구조적 불평등을 안고 살아온 집단이 본격적으로 고령기에 들어서면 그 불안정성은 고스란히 사회 전체 리스크로 되돌아온다. 연금과 복지지출은 늘어나고, 소비와 출산은 위축된다. 일본이 단순히 취업지원을 넘어 사회보장 강화에 무게를 두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도 세대 불평등 구조적으로 완화시킬 정책을

일본의 ‘취업빙하기 세대’ 논의는 한국에도 깊은 경고음을 울린다. 청년실업, 비정규직 확대, 주거불안, 저출산은 이미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다. 지금 당장 눈앞의 일자리 정책으로 대응한다고 해도 특정 세대가 사회 진입기에 겪는 불리함은 수십 년 뒤 고령기에 이르러 더 큰 사회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한국도 선제적으로 안전망을 보강해야 한다. 안정된 일자리 제공과 정규직 기회 확대, 청년 주거안정, 결혼·가정 형성 지원, 그리고 연금 사각지대 해소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

단기성과에 치중하지 않고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한 장기전략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한국판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머지않아 현실화될 수 있다. 결국 일본 사례는 한 세대의 불운을 넘어 사회구조 전반을 흔드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원 프로그램’이 아니라, 세대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완화하는 장기적 사회계약이다. 일본의 대응을 거울삼아 한국도 미래세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상석연구원, 아지아대학교 특임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