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틱톡은 ‘합의’ 엔비디아는 ‘갈등’
무역협상 전선 온도차 뚜렷
“협상 지렛대용 시점 조절”
양측은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의 미국 내 사업 구조 개편에 원칙적 합의를 이루면서 무역 협상의 숨통이 트이는 듯했지만 곧바로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에 대해 중국이 반독점법 위반 결론을 예고하며 갈등의 불씨를 되살렸다. 협상과 제재가 동시에 이어지는 이번 상황은 양국이 기술과 무역을 둘러싸고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은 15일(현지시간) 엔비디아가 2020년 인수한 멜라녹스 테크놀로지에 대해 반독점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잠정적으로 위반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당시 이스라엘-미국 합작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멜라녹스를 약 69억달러에 인수했고 중국은 해당 거래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이번 발표는 미국과 중국이 마드리드에서 고위급 무역 협상을 진행하던 중 나온 것으로 의도된 ‘시점 조절’이라는 분석이 잇따른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안에 정통한 인사들을 인용해 “SAMR은 이미 몇 주 전 결론을 내렸지만 무역 협상을 앞두고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발표를 연기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협상장에서 “조사 발표의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엔비디아는 즉각 “모든 법적 요구를 준수하고 있으며 규제 당국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잠정 결론이 확정될 경우 전년도 매출의 최대 10%까지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으며, 관련 사업 관행을 조정하라는 명령도 내려질 수 있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미국이 고대역폭 메모리 칩 등 첨단 반도체에 대한 수출통제를 강화하자 곧바로 엔비디아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시작한 바 있다.
이에 반해 미중 양측은 미국 내 안보 우려가 제기된 틱톡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5일 자신의 SNS를 통해 “젊은이들이 정말로 구하고 싶어 했던 기업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히며 사실상 틱톡을 지목했다. 미국 재무부는 틱톡이 미국이 통제하는 구조로 재편될 것이며 모회사인 바이트댄스는 지분을 소수만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상무부도 “건설적이고 솔직한 협의를 통해 기본적 합의에 도달했다”며 틱톡 매각을 원칙적으로 수용했음을 인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합의 배경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추진, 10월 APEC 정상회의 일정, 외교적 성과를 고려한 중국의 기존 입장 완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분석했다.
틱톡은 미국 내에서 안보 우려로 금지 위협을 받아왔으며 2024년 ‘틱톡 금지법’이 통과된 이후 미국 내 사업권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지 않으면 서비스가 중단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젊은 지지층의 틱톡 이용률을 의식해 시행을 유예했고 양국은 새로운 미국 법인을 설립해 미국 측이 과반 지분을 보유하는 방향으로 조율 중이다.
이에 따라 틱톡 매각 시한 역시 연장될 것으로 보이며 19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통화에서 최종 합의가 승인될 전망이다.
틱톡이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과는 달리 엔비디아 문제는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은 인공지능(AI) 칩을 포함한 첨단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통제해 왔고, 엔비디아는 이에 대응해 중국 시장 전용 저사양 GPU인 H20 칩을 설계했다.
미국은 이마저도 올해 초부터 금지했고, 이후 양측은 매출 일부를 미국 정부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제한적 판매 재개에 합의한 상태다.
그럼에도 중국은 자국 기술기업들에 H20 칩 구매를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SAMR의 이번 조치는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미국의 기술 봉쇄에 맞선 전략적 대응으로 해석된다.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중국을 자주 방문하며 의지를 보여왔지만 최근에는 “미국의 규제가 오히려 중국의 독자 기술 개발을 촉진시키는 실패 전략”이라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중국이 틱톡 문제에서는 합의를 통해 실리를 추구하지만, 반도체와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여전히 양보 없는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틱톡과 엔비디아는 미중 무역 협상에서 각기 다른 방향의 상징적 사례로 자리 잡았다. 하나는 정치적 유연성으로 일시적 합의를 끌어냈고, 다른 하나는 기술 주권 수호라는 전략적 명분 아래 긴장을 지속하고 있다. 관세 유예 연장, 수출통제 완화 등 핵심 현안을 앞두고 양국의 협상 테이블에는 협력과 갈등이 동시에 놓여 있는 셈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