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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간첩 조작과 대통령의 사과

2025-09-18 13:00:05 게재

8월 말 이재명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해 재일동포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여러 재일동포를 체포해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행사 사진에는 많은 시청자들이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 텔레비전 다큐 ‘간첩과 섬소녀’의 주인공이 대통령 내외 옆에 앉아있는 보습도 보였다. 그 분은 이름도 거창한 거문도간첩단사건의 일원이었지만 실제로는 회유와 강압으로 만들어진 간첩이었다. 대통령의 사과는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였다. 세상은 진짜 달라졌다.

그러나 재일동포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언급되어 있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상 규명, 법원의 형사 재심, 피해에 대한 민사배상 등의 구제조치는 모두 피해자 개인이 동분서주하며 이루어낸 성과였다.

검찰을 비롯한 국가기관은 여전히 사실을 은폐하거나 부인하며 피해자를 힘들게 했다. 논란이 많았던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으로 무죄 확정 시점으로부터 3년이었던 국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한이 갑자기 6개월로 줄어들은 적도 있었다. 골탕을 먹은 피해자에 대한 구제 방법은 현재까지 입법 사법 행정부를 막론하고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피해자 구제방법 논의조차 시작 안돼

과거사 재판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이 호소해야 비로소 구제절차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경찰 정보부 보안사는 피해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할 때까지 모른 척하고 있다. 국가의 의지가 있으면 자체적으로 과거 간첩조작사건을 조사해서 바로 잡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문제는 유신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긴급조치 피해자의 재심과 국가배상 과정에서도 이미 지적되었다. 더구나 재일동포 피해자 중에는 재심을 추진하는 양심수 지원 운동단체도 소재를 파악할 수 없는 사례가 많다. 세월이 흘렀으므로 본인이 사망했을 경우에는 가족을 비롯한 연고자를 찾기가 더욱 어렵다.

한국과 일본의 지원자들이 대략 160여명 규모로 추산하는 피해자 가운데 지금까지 40여명 만이 재심을 비롯한 구제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유죄 판결을 받고 실형을 살지는 않았지만 큰 마음먹고 떠난 본국 유학을 중지하거나, 수사 과정에서 심신이 망가져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 사례도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정부와 재야 인권운동을 막론하고 피해 실태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조작 간첩단 피해자들은 대통령이 사과할 정도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라도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던 재일동포 중에는 완전히 망각된 집단이 있다. 한민통(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활동가들은 본래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합리적 운영을 촉구하는 세력이었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민주헌정이 파괴되자 이들은 본국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착수했으며 망명객이 된 김대중과도 연대하게 되었다. 1980년 5월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의 죄목에는 반국가단체인 한민통과 접촉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한국 정보기관의 감시와 견제를 받게된 한민통은 한국의 민주화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통일을 촉구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한국의 민주화가 통일보다 우선이라는 기독교 계통의 해외 민주화 운동 세력과도 사이가 멀어졌다.

간첩으로 체포된 재일동포 중에는 한민통의 지시를 받고 한국에 침투했다는 혐의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 반면에 이들이 북한의 앞잡이라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1998년 2월에 김대중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나 한민통과, 그 후신인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은 반국가단체로 남았다. 오히려 민주당 계통의 정부는 보수파의 공격을 우려해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이제는 고령이 된 활동가들도 한국 방문이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실질적인 과거사 청산 있어야 미래 열려

재일동포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는 가시적인 성과를 동반해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남북화해를 위해서도 군사정권이 찍은 낙인으로 고통받는 재일동포들의 한을 빨리 풀어야 한다. 실질적인 과거사 청산이 있어야 미래가 열린다.

이종구 성공회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