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과학기술, ‘추격’ 아닌 ‘선도’로
요즘 글로벌 정세를 대변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미중갈등, 기술 패권, 양극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 관세전쟁, 자국 중심주의 등 수많은 표현이 떠오른다. 이 모든 키워드를 관통하는 대표적 현상은 결국 ‘자국 경제 이익 중심’이다. 각국은 관세장벽을 높이며 무역전쟁을 벌이고, 자국 이익을 앞세워 전쟁을 불사한다.
물론 과거에도 국제관계는 자국 이익을 위한 힘의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배려하거나 절제된 방식으로 힘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오늘날 글로벌 차원의 명분이나 인류보편의 가치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결과적으로 세계는 강자의 논리에 기반한 무한경쟁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 연구개발 이끌 ‘인재’에 달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반은 냉전과 글로벌 진영논리에 기반한 추격형 모델이었다. 철강 조선 석유화학 가전 자동차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은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고, 우리의 강점인 엔지니어링 역량을 결합해 더 빠르고 저렴하게 제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에는 선진국이 일정 부분 우호적인 여건을 제공했고, 덕분에 우리나라는 추격형 경제의 성공사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선진국과의 격차가 줄어들수록 상황은 달라졌다. 특히 2021년 7월 유엔이 우리나라를 역사상 처음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하면서 더 이상 개도국의 이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우리만의 강점을 찾고 전략적으로 육성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강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부지런하고 우수한 역량을 가진 사람, 곧 ‘인재’다. 초기에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국민의 손재주와 저임금 노동력이 경제성장을 이끌었고, 최근에는 연구개발 인재를 기반으로 한 추격형·모방형 제품이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미래는 연구개발을 이끄는 ‘인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연구개발 예산의 획기적 증대는 매우 의미가 있다. 2026년 연구개발 예산은 35조3000억원으로, 전년 29조6000억원 대비 19.3% 증가해 역대 최대 규모다.
다만 우려되는 점도 있다. 지금처럼 추격형 연구개발만으로는 선진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회의가 든다. 이제는 ‘최초’와‘최고’를 목표로 하는 선도형 연구개발로의 전면적 전환이 필요하다. 선도형 연구개발은 복잡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융합성을 특징으로 하기에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보장하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려면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시행착오를 통해 빠르게 길을 찾아야 한다. 연구비 사용 역시 ‘합목적성’이라는 관점에서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며, 실패를 포용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과도한 감사와 규제가 연구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일도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연구자를 믿고 기다려주는 신뢰의 문화가 필요하다.
추격형 전략은 한계 봉착, 선도형 연구개발 필요
지금 우리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과거의 추격형 전략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고, 앞으로는 선도형 연구개발을 통해서만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재와 연구개발이 핵심이다. 정부와 사회가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혁신 생태계를 조성할 때 우리는 추격을 넘어 진정한 선도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