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사고보다 참담한 ‘10명 사상 안성 교량 붕괴’ 사고조사
지난 8월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사고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사고위험은 위험으로 인식되는 것만으로도 사고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하지만 전체 공사시스템에서 위험 생성과 관련된 결함과 빈곳을 살펴 합리적인 수정과 채움으로 위험의 생성 자체를 억지해야 한다. 이것이 사고조사의 목적이다.
이번 사고조사 보고서 첫머리에도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기술적 대책 및 대안을 제시함’이라는 분명한 활동 목적이 적혀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의 결정적인 위험을 위험으로 인식하지 못한 사고조사 결과는 유사한 미래 사고를 보는 것 같아 더 참담하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의 기술적 원인은 비교적 단순했다. 로켓추진체 연결부 밀봉을 위한 고무 재질의 O링이 저온에서 굳어져 새어 나온 연료 때문에 발사 73초 만에 공중폭발했다. O링 문제가 사전에 일부에서 제기됐으나 프로젝트 참여 주체들의 부담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발사 일정을 미루지 못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근본적 사고원인을 사회와 기술의 복합 작용으로 발표했다. 이 사고조사는 NASA의 조직문화와 시스템을 개혁했고 외부 요인의 부작용을 크게 줄였다.
전체 방어벽을 관통한 위험
교량받침은 교량 상·하부 사이에서 상부 하중을 하부로 전달하는 동시에 교량에 가해지는 다양한 하중과 변위를 흡수해 교량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중요 부재다. 이번 사고 교량받침은 지진 피해 경감을 위한 면진받침 중 팬들럼(Pendulum)이라 불리는 최신 모델이다. 지진파 소산을 위해 받침 상판이 수평 이동은 물론, 상하로 회전되는 구조다.
사고는 그 위에 올려진 약 175톤의 높고 좁은 장대 거더(건설 구조물을 떠받치는 보)와 350톤의 런처(거더 가설 장비)작동, 교량의 종·횡단, 편구배, 사각, 기온, 바람 등 많은 물리적 조건들의 결합에서 발생됐다. 이들 조합에서 팬들럼은 챌린저호 사고의 O링에 해당하는 이번 사고의 결정적 요인이다.
종래의 교량받침과는 달리 본 사고 교량에 적용된 팬들럼은 상하 회전에 대한 강성이 없다. 준공 상태와는 달리 시공 중 팬들럼에 올려진 낱개 거더는 그냥 둬도 전도되는 매우 위험한 상태다. 이 상태는 팬들럼 개발단계에서 위험으로 인식돼야 했다. 그러나 사고발생 공정인 거더 시공계획까지도 팬들럼의 위험이 고려되지 않았다.
과거 외국 신기술 도입 시에 이런 문제들이 종종 있었다. 몇 차례 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나서야 기술도입 과정에 누락한 위험이 위험으로 인식되면서 사고는 잦아들었다. 개발자들은 완공된 구조물을 전제로 개발하기에 그 상태의 기능과 품질에 집중한 나머지, 시공 중 일시적 위험을 종종 간과한다. 그 위험이 개발 심의 발주 설계 시공과 감리 단계까지 모든 과정을 관통해 사고로 이어졌다. 정부가 강조하는 위험성 평가가 정작 필요한 이 과정 중 어디서도 작동되지 않았다.
그 상태의 팬들럼은 사고조사에서 지적한 불이행들이 온전히 이행됐더라도 사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회전 강성이 종래의 교량받침 수준이라면 이번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위험은 팬들럼의 회전 특성을 파악한 사고조사에서조차 누락됐다.
위험을 위험으로 인식하지 못한 사고조사
거더를 받치고 있는 팬들럼과 거더 위에서 운전되는 350톤 중량의 런처는 이번 전도사고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런처와 팬들럼 각각은 나름의 공학적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 장점과 위험은 별개 사안이다. 사고조사는 두 기술의 장점과는 별개로 각각 그리고 조합에서 형성되는 위험을 탐색하고 공사의 모든 과정 즉, 시스템 정비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조사는 핵심 위험은 간과한 채 결과 관점에서 추론한 시나리오를 특별한 해석으로 설명한, 부수적이고 부분적인 조치 결함과 사고 개연성은 물론, 법적 판단도 불분명한 규정 위반을 사고원인으로 제시했다. 조사를 수사로 착각했다면 모를까, 납득하기 쉽지 않고 더욱이 보고서에 명시된 유사 사고방지는 기대하기 어렵겠다.
인간의 감정은 무의식화된 계산 결과이고 이성적 판단도 그 계산에서 자유롭지 않다. 관계 기관들, 건설사와 유대 범위 내의 인사들로 구성된 사고조사위원회는 우리 사회 규범의 영향으로 부지부식 간에 독립성을 상실했지 싶다. 안전에 관한 이해 부족과 독립성 확보가 쉽지 않은 사회적 여건을 고려하면 사고조사의 문제 역시 중대산업재해의 근본 원인과 같은 기술과 사회의 복합 작용이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