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회계사 수습과 사다리걷어차기
금융감독원은 3일 공인회계사 시험 최종합격자 1200명을 발표했지만 합격자들은 기쁨보다는 수습할 회계법인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 올해 수습 공인회계사 채용 규모가 4대 회계법인 800명, 중소형 회계법인 100명으로 모두 합쳐도 900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작년 합격자 중 수습기관을 구하지 못한 250명이 올해로 이월돼 1450명의 공인회계사 합격자들이 900개의 수습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결국 500명 이상 공인회계사 합격자들이 수습기관을 구하지 못해 ‘회계사 낭인’이 될 상황이다.
최근 회계법인들의 실적이 좋지 않고, 인공지능이 단순 업무를 점차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향후 공인회계사 수습기관 미지정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외부감사인 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양성과정 필수
회계감사는 공인회계사의 기본업무이다. 공인회계사를 ‘자본시장의 파수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회계감사가 회계정보의 신뢰성을 높여 자본시장에서 자원배분 기능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회계감사 비용은 감사받는 기업이 부담하지만 감사받은 회계정보를 투자자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무료로 이용하기 때문에 회계감사의 혜택은 사회 전체가 누린다. 따라서 정부는 공공재인 회계정보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공인회계사들에게 회계감사와 관련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높은 전문성과 엄격한 독립성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우리나라에서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일정 학점을 이수하고 공인회계사 1차와 2차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이후 회계법인에서 최소한 2년간의 실무수습을 받아야 한다. 외부감사인이 되기 위해서는 회계 및 감사와 관련된 전문지식을 학습하고 실제 회계감사에 참여해 체계적인 실무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의사와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비싼 학비를 부담하면서 의대와 로스쿨을 졸업해야 한다. 반면 공인회계사는 시험에 합격하면 전문직 진출이 가능하다. 매년 1만6000명이 넘는 지원자가 공인회계사 시험에 응시하는 이유는 누구나 자격 조건만 갖추면 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 중 일부 상위권 대학 졸업생들만 4대 회계법인에서 체계적인 수습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형 회계법인까지 포함해도 상위권 대학 출신이 아닌 합격자들은 수습기회를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불리한 배경과 출신학교를 노력으로 극복해 시험에 합격했지만 회계법인에서 수습을 하지 못해 외부감사인으로 업무를 수행하기는 어렵게 된다.
문제의 원인은 신외부감사법 도입으로 공인회계사 수요가 일시적으로 증가했음에도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잘못 예측해 합격자수를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배경이나 출신학교에 관계없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공인회계사 합격자들에게 최소한의 수습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배경이나 출신이 아닌 자신의 노력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이다.
공정한 경쟁 위해 최소한의 수습 기회는 제공해야
미지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은 회계법인에서 수습이 가능한 수준으로 공인회계사 합격 인원을 조정해야 한다. 또한 회계법인들이 적극적으로 수습 회계사를 채용하도록 채용 규모에 따라 감사인 지정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회계법인도 적극적으로 수습 공인회계사 채용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수습 공인회계사들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