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코메리칸 제조업 시대를 열자

2025-10-01 13:00:04 게재

관세협상을 둘러싼 한미 갈등이 전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서 한국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7월 말 협상 내용은 미국이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춰주는 대신 우리나라는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3500억달러를 선불로 지급해달라고 요구하고 투자처는 미국이 정하며 수익배분도 일정 한도 충족 후에는 미국이 90%를 가져가겠다고 한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목표 액수를 채워 제공하려고 했던 우리나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돌발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기상천외한 발상 앞에 나라 전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미란 보고서’에서 시작된 미국의 제조업 부활 전략

위기는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단기금융 자유화의 위험에 대한 인식 부족과 수출 경쟁력에 대한 과신으로 환율조정에 실기하면서 파국을 맞았다. 현재 미국의 기상천외한 발상은 세상이 변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올해 4월에 널리 알려진 ‘미란 보고서’의 구상이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현재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면서 연방준비제도 이사인 스티븐 미란은 작년 11월 ‘세계 무역 시스템 재편을 위한 사용자 안내서’를 발표했다. 요지는 미국이 세계 자유무역 시스템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자국 제조업은 쇠퇴하고 국가부채는 증가해 현재 패권 자체가 도전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고율관세 부과와 달러화 평가절하를 통한 무역시스템의 재편과 미국부채의 동맹국 분담을 대응책으로 제안했다.

현재 진행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폭탄과 강력한 투자 요구는 미란 보고서의 구상과 맥이 닿아 있다. 용어는 투자이지만 억지춘향의 관세 인하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제 미국은 자국 제조업의 부활과 패권의 재건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이에 미중 전략경쟁도 국면 전환기로 접어든다. 지난 7년간 중국의 선진국 진출과 첨단기술 습득을 차단하는 미국의 중국 견제론이 화두였다면 이제부터는 미국의 자체 역량 재건이 핵심과제가 될 것이다. 동맹의 역할 또한 변하게 되는데 견제국면에서는 협력과 협조가 중요했지만 미국의 재건국면에서는 더 긴밀한 지원과 협업이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AI)과 첨단기술 경쟁은 더욱 첨예하게 전개될 것이다.

새 시대의 초입에서 우리나라는 관세협상을 둘러싸고 국가 명운이 걸린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미국은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과도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 현재 우리의 자화상이다. 세계의 변화와 한국의 좌표에 대한 광범위하고 철저한 점검이 시급하다.

25일(현지시각) 보도된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한국과의 협정이 위태로워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으며 “한국은 그 합의를 받아들이거나 관세를 내야 합니다. 흑백논리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롯이 우리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는 엄중한 상황이 아닐 수 없으며 이 상황에서 차라리 관세로 가자고 정한다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다.

신뢰에 기반한 코메리칸 제조업 시대 기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다. 진정성과 구체성을 갖고 합의 도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상호신뢰가 공고해지면 현실성 있는 타협안이 도출될 것으로 생각된다.

제안한다면 미국 제조업의 성공적 재건과 한국 제조업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한국 글로벌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미국 진출과 현지 기업과의 합작·협력을 통해 코메리칸(Komerican) 제조업 시대를 열었으면 좋겠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훈련 프로그램을 알차게 빨리 만들기를 희망한다.

장윤종 전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