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은퇴쓰나미 세계경제 흔드나
타임지 “노인낙원이 불공정 잉태… 새로운 사회계약 필요”
제2차세계대전 직후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급증했다. 평화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안도와 기대가 ‘베이비부머(Baby boomer)’ 시대를 열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산업화와 세계화 정보화를 이끌었다. 베이비부머들은 인류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번영과 안정과 평화가 깃든 시대를 열었다.
이제 베이비부머들이 은퇴를 하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는 전세계의 사회・경제・문화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노인학자인 켄 다이크월드(Ken Dychtwald) 박사는 베이비부머들의 고령화와 은퇴로 인한 대전환의 파장을 ‘노령화 물결(Age Wave)’로 명명했다. 다이크월드 박사는 베이비부머들의 ‘노령화 물결’은 단순한 인구변화가 아니라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충격을 수반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노령화 물결은 우리가 살고 일하고 배우고 늙는 방식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갈파했다.
‘노령화 물결’의 직접적인 파장은 경제에서 나타난다. 베이비부머의 노령화는 연금과 보건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초래한다. 출산율 저하와 기대수명 연장까지 겹치면서 젊은 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노인인구 부양부담이 심화되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방안의 코끼리”
런던 랭커스터대학 경제학자인 르노 푸카르(Renaud Foucart) 교수는 타임지 최신호에 ‘세계경제가 안고 있는 베이비부머 문제(The Global Economy Has a Boomer Problem)’라는 칼럼을 실었다. 푸카르 교수는 베이비부머를 ‘방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에 비유한다. ‘방안의 코끼리’처럼 누구나 베이비부머 문제를 알고 있지만 불편하고 껄끄러운 나머지 아무도 이를 언급하거나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비부머의 은퇴에 따른 연금 지출 증가와 정년연장, 사회복지 비용 부담 등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푸카르 교수는 쓴소리를 쏟아낸다. 그는 “노인낙원(Gerontopia)이 불공정을 낳고 있다”면서 그 사례로 프랑스와 영국을 꼽았다. “프랑스의 상황은 거의 풍자만화에 가깝다. 프랑스의 연금 지출은 국가예산의 약 1/4을 차지한다. 현재 은퇴자들이 일할 당시에는 다수의 기여자가 소수의 수급자를 부양했다. 또한 기대수명이 10년 늘었음에도 연금수령 연령은 5년 낮췄다. 오늘날 은퇴자들의 연금은 노동자들의 임금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프랑스 연금생활자들은 부유하다. 70세 이상의 연금생활자들은 소득 의1/4을 저축한다. 반면 50세 미만 근로자들은 그 절반 밖에 저축을 하지 못한다.”
영국은 ‘트리플 락(triple lock)’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트리플 락’이란 △물가상승률 △평균임금상승률 △2.5% 인상률 중 가장 높은 쪽을 기준으로 매년 연금인상률을 결정하는 제도다. 연금인상률이 경제 성장률을 앞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푸카르 교수는 “1980년대 영국은 재규어와 롤스로이스, 브리티시항공, 통신·가스·석유·공공요금·철도회사 등을 민영화해 일상적인 정부 지출을 충당했다”면서 “이제 납세자들은 파산 직전의 민간 수도회사를 구제하고, 고속철을 건설하며, 전력망을 개선하기 위해 허덕이고 있다”고 밝혔다.
‘방안의 코끼리’를 길들이려는 노력은 번번이 좌절됐다. 프랑스의 경우 미셸 바르니에 총리와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연금 및 사회복지 지출 삭감 등을 추진하다가 의회의 불신임 투표로 쫓겨났다.
영국의 경우 테레사 메이 전 총리는 부유한 연금생활자들의 자산을 매각해 요양비용을 부담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메이 총리는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고 결국 선거에서 패배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고령층에 대한 겨울철 난방비 지원을 대폭 삭감하는 내용의 공공지출 조정안을 밀어붙였다. 여론이 악화되고 지지율이 급락했다. 스타머 총리는 결국 지원금 삭감정책을 철회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푸카르 교수는 “가난한 젊은이들이 부유한 은퇴노인들을 부양하게 해서는 안된다”면서 “유럽은 적어도 미래연금에 대해서는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IMF ‘건강한 노화’에 주목
그렇다면 ‘노령화 물결’의 파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실버 경제의 부상: 인구 고령화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THE RISE OF THE SILVER ECONOMY: GLOBAL IMPLICATIONS OF POPULATION AGING)’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전세계 인구 고령화의 경제적 함의’를 분석했다.
IMF는 2000~2022년 사이 29개 선진국과 12개 신흥국에서 약 100만 명을 대상으로 노령화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IMF는 설문자료를 바탕으로 세계적 노화추세와 그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를 관찰했다. 보고서는 “세계 인구의 평균 연령은 2020년부터 세기 말까지 약 11세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전세계적으로 65세 이상 고령층의 비중이 빠르게 늘면서 ‘실버 이코노미’가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버 이코노미’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의 하락과 그에 따른 경제성장의 둔화, 공공지출의 증가 등 암울한 전망을 내포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는 노동력의 축소를 초래하고, 이는 다시 소비·투자·생산의 성장률을 낮춘다. 고령화는 더 이상 선진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여러 개발도상국과 신흥시장에서도 이미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보고서는 그러나 ‘건강한 노화(Healthy aging)’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더 오래 살 뿐 아니라 더 건강하게, 더 생산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건강한 노화’가 인구 역풍의 부정적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41개 선진국·신흥국 표본자료에 따르면, 2022년의 70세는 평균적으로 2000년의 53세와 동일한 인지 능력을 보였다. 이러한 인지 능력 향상은 개인이 노동시장에 계속 결속(취업 또는 구직) 되어 있을 확률을 약 20%p 높이고, 주당 평균 노동시간을 약 6시간 늘리며, 노동소득을 약 30% 증가시켰다.”
보고서는 고령화의 부정적 효과를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다층적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기대수명 개선에 맞춰 실효 은퇴연령을 점진적으로 높여 가야 한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집단의 노동력 참여를 끌어올리고, 성별 격차를 축소하는 조치들을 취할 경우 성장 순풍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다층적 노동공급 정책을 통해 향후 25년간 전세계 연간 산출 성장률을 약 0.6%p 끌어올릴 수 있다”면서 “같은 기간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등 인구 요인이 야기하는 성장 저하의 3/4 정도를 상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도 정년연장과 국민연금 개혁 시급
베이비부머의 고령화와 함께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2024년 12월 23일자로 전체 인구 대비 20%를 돌파했다.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국제연합(UN)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기는 사회를 ‘초고령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 독거노인의 비중은 32%를 넘어섰다.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에 올라 있다. 노인에 대한 소득보장과 의료보장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는 정년연장과 국민연금 개혁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적정년은 60세지만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63세로 소득공백이 3년이나 된다. 국민연금마저 베이비부머들이 80세를 넘어서는 2040년대 이후엔 지탱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정년연장과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노후빈곤과 국가 복지부담 증가, 소비위축 등 경제・사회 전반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당장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대대적인 개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쉽지 않은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도 베이비부머 문제는 ‘방안의 코끼리’이거나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정년연장이나 국민연금 개혁 등 노령화 대책은 워낙 세대간 계층간 노사간 복합적인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 ‘베이비부머 은퇴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