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 곳곳 파행 국감…웃는 피감기관들
“내란 종식” “독재 저지”, 여야 ‘정쟁 국감’ 대치
10여일만에 834개 기관, “하루만 버티자” 만연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정권교체 이후 치르는 첫 국정감사(국감)가 거대양당의 강대강 대치로 파행을 거듭하면서 부작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여야가 설정한 국감 공격 대상인 피감기관은 긴장하는 반면 다른 피감기관들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국감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피감기관들 사이에서는 쟁점이 많은 피감기관과 같은 날 감사를 받는 ‘국감 운’, 예상치 못한 대치로 국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파행 운’을 거론하며 속으로 웃는 상황이 적잖게 회자되고 있다. 상임위마다 10여일정도로 진행하는 국감의 피감기관이 800여개에 달하다보니 ‘하루만 버티자’는 피감기관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국감이 정기국회 기간에 치러지면서 예산심사가 부실해지는 연쇄 부작용도 낳고 있다. 분리국감이나 상시국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7일 더불어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이번 국감은 내란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것으로 여야가 대치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파행을 거듭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파행국감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민주당은 이번 국감을 ‘내란 청산 국감’, 국민의힘은 ‘독재 저지 국감’으로 규정하고 시작했다. 첫 날부터 법제사법위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에서는 욕설과 고성, 삿대질이 오가며 퇴장, 감사중단 등 파행이 이어졌다. 전날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선택적으로 찍는다. 기자들은 나가 달라”며 언론까지 쫓아냈다.
정쟁으로 덧칠된 국감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파행이 거듭될수록 민생 등 다른 현안들은 묻힐 수밖에 없다. 전날 과방위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우주항공청 등에 대한 국감은 오후 늦게야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캄보디아 범죄(정무위 등), 쿠팡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 대한 무혐의 외압 폭로(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 등은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피감기관들은 ‘하루만 넘기면 된다’는 도덕적 해이에 쉽게 빠졌다. 전날 교육위에서 한국교육시설안전원은 야당의원들에게 특정 질의를 요청하는 내용의 문서를 보내는 ‘질의 사주’로 논란을 일으켰다. 하루만 모면하면 되는 ‘무더기 국감’이 만들어낸 편법으로 풀이된다. 올해 국감 대상기관은 총 834개로 전년대비 32개 늘었다. 각 상임위마다 실제 국감일은 10일 안팎이다. 하루 평균 80개, 상임위당 4개의 피감기관에 대한 국감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꼴이다.
준비 기간부터 실시까지 두 달 이상을 사용하는 국감을 100일 정도의 정기국회 기간에 실시해 결국 상임위가 내년 예산 728조원과 관련한 사업들을 심사할 수 있는 기간을 줄여 놨다.
2012년에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을 바꿔 ‘9월에 10일부터 20일간’을 ‘정기국회 이전’으로 옮겨놨으나 법 개정 취지에서 벗어나 15년 동안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고 ‘예외 조항’을 활용해 오히려 ‘10월 국감’으로 더 미뤄 놨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2조)에서는 ‘국회는 국정전반에 관하여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매년 정기회 집회일 이전에 국정감사 시작일부터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감사를 실시한다’고 규정하면서 예외적으로 ‘다만, 본회의 의결로 정기회 기간 중에 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2024회계연도 예산안’에 대한 심사는 상임위별로 1주일 내외에 그쳤다. 두 세 번의 예산결산소위와 한 번의 전체회의를 갖고 의결했다. 심사가 부실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