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폭주 아닌 속도 늦추기가 답이다

2025-10-24 13:00:01 게재

반환점을 돈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의 여야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특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전문가들은 “F학점도 아깝다”고 입을 모은다. 거대 여당으로서의 책임감도, 사회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안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강성지지층만 의식한 막무가내식 폭주로 일관해서다. ‘조희대’로 시작해 ‘김현지 방탄’으로 이어진 현재까지의 민주당 국감 대응을 보면 ‘민주라는 이름이 아깝다’ 싶을 정도다.

그나마 캄보디아 사태나 한미 관세협상, 10.15 부동산대책 등 블랙홀처럼 국민의 관심을 빨아들이는 장외 이슈가 아니었다면 민주당의 실점은 더 두드러졌을 것이다. 여기에 국감기간 윤석열 면회로 내란정당임을 다시 환기시킨 국민의힘 지도부의 헛발질도 민주당의 민낯을 가리는 요인이 되었을 게다.

내란정당을 민주주의 수호자로 만든 마법

국감이 원래 현 정부의 실정을 파헤치는 ‘야당의 시간’이지만 이번 국감의 경우 윤석열정부의 국정실패를 확인할 ‘여당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조희대 끌어내리기’ 등 엉뚱한 곳에 당력을 낭비하면서 오히려 죽어가던 내란정당에 생명을 불어넣는 기적을 만들고 있다.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고 한 윤석열의 위헌불법적인 비상계엄에 동조·방조했던 국민의힘이 삼권분립의 신봉자, 민주주의 수호자인 양 행세하게 만든 것이다.

내란척결은 분명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3대 특검이 활동하고 있는 지금은 일단 그들에게 맡기는 게 맞다. 민주당은 관세협상이나 캄보디아 사태 해결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열심인 모습을 보였다면, 그리고 윤석열정권의 정책실패를 파헤치는 방향이었다면 훨씬 국민의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민주당의 폭주를 이끌고 있는 정청래 당 대표나 추미애 법사위원장,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그리고 입만 열었다하면 강성발언을 쏟아내는 의원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선택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바닥민심은 이미 빨간불이다.

한국갤럽의 10월 3주 데일리오피니언(10월 14~16일 조사)에 따르면 정당지지도에서는 민주당(39%)이 국민의힘(25%)에 여전히 상당한 격차로 앞선다. 그런데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한 조사결과를 보면 ‘여당후보 다수 당선’ 39%, ‘야당후보 다수 당선’ 36%로 둘의 격차는 오차범위 안으로 좁혀진다.

특히 유권자의 1/3에 해당하는 무당층에서는 ‘여당후보 당선’ 15%, ‘야당후보 당선’ 35%로 오히려 역전돼버린다. 국민의힘이 야당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쨌건 민심은 ‘이대로 가면 내년 지방선거 민주당 승리는 없다’고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중도층 무당층의 외면을 받은 정당이 선거에서 이긴 전례는 없었다.

12.3 내란사태가 발발한 지 10개월, 그리고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 만에 민주당이 이처럼 민심의 경고를 받은 이유는 자명하다. 강성지지층만 바라보는 민주당식 팬덤정치, 자신만 정의롭다는 오만의 정치,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경멸의 정치에 유권자들은 고개를 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지도부는 개혁만 성공시키면 결국 민심이 돌아설 것이라며 오히려 급가속 중이다. 하지만 이 또한 근시안적 판단일 뿐이다. 10.15 부동산대책처럼 모든 정책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 사법개혁 검찰개혁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된 정책도 실행과정에서는 소리가 나는 법인데 하물며 완력으로 밀어붙인 정책이 그냥 넘어갈까. 그것이 민주당 뜻대로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개혁성공도 일반 유권자 속도 맞춰야 가능

지금 각광받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도 머신러닝 과정에서 종종 ‘파괴적 망각(catastrophic interference)’이라는 장벽에 부딪친다고 한다. 새로운 정보를 학습할 때 이미 학습한 내용을 잊어버려 엉뚱한 답을 내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지금 민주당에도 딱 들어맞는다. 강성지지층만 바라보며 폭주를 거듭하다 5년 만에 정권을 헌납하고도 ‘적폐세력’ 대신 ‘내란세력’이라는 새로운 버전이 나타나자 지난날의 교훈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자기 파괴의 폭주를 거듭하고 있다는 얘기다.

머신러닝에서 ‘파괴적 망각’은 이름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차란 란가나스(Charan Ranganath) 캘리포니아대 다이나믹메모리랩 소장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기계의 학습속도를 견디기 힘든 만큼 늦출 것’을 제시한다(책 ‘기억한다는 착각’).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폭주가 아니라 속도를 늦춰야 자기 파괴를 면할 수 있다. 그토록 목매는 개혁도 강경지지층의 속도가 아닌 일반 유권자의 속도에 맞춰야 성공할 수 있다.

남봉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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