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미중갈등 속 EU의 선택이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

2025-10-31 12:59:58 게재

아테네의 장군이자 역사가인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전쟁은 불가피했다고 분석했다. 전쟁의 직접적 원인은 두 동맹 간 대립이었지만 진정한 원인은 신흥 강대국인 아테네의 부상에 대한 기존 강대국인 스파르타의 두려움이었다.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

시진핑 주석은 이 함정이 필연적이지 않다면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을 모두 포용할 수 있을 만큼 넓다고 말했다.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제의하며 중국의 부상을 미국이 수용해줄 것을 희망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바이든 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많은 이견에도 불구하고 같은 견해를 갖던 점이 있었다. 세계가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변곡점에서는 어디로도 갈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중국이 전략적 동반자이자 경제적 경쟁자이며 체제 라이벌이라고 복합적으로 정의한다. EU는 러시아가 허리케인이라면 중국은 기후변화로서 장기적인 도전을 제기한다고 인식한다. 중국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EU가 어떤 연합이 되고자 하는가의 문제로서 EU를 일어서게 할 수도 넘어지게 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본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이 순진하던 때는 지났다고 말했다. 경제발전에 따라 중국의 정치체제도 변화할 것이라는 독일의 ‘무역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Handel)’ 기대도 깨졌다.

트럼프 이후의 미국 주시하지만 현실은

EU의 어려움은 미국과 함께 대응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막대한 방위비 증대를 요구하면서도 높은 관세와 그린란드 병합을 위협한다. 미국의 상호관세는 EU에 어려움을 안겼다. 상호관세에 상호성과 논리는 없었다. EU는 중국이 아편전쟁 이후 경험한 ‘치욕의 세기’를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갖는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영국 스코틀랜드의 골프장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가 타결한 무역협상에 대해 EU 내에 불만이 있다. 부당한 압박에 대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설득력은 아이러니하게도 3년 반 후면 퇴임한다는 점이다. 유럽은 트럼프의 요구가 무리하며 논리에도 맞지 않지만 트럼프 퇴임 후에는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다. EU는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라는 바이든 전 대통령의 말처럼 미국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미국이 돌아왔다” “외교가 돌아왔다” “동맹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중국에 대해 EU와 함께 대응했다. 미국은 중국에 협력(cooperation), 경쟁(competition), 대치(confrontation)의 3C를 제시하고 경쟁에 집중해 EU와 같은 복합적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돌아왔다. 그가 야기한 변화가 얼마나 지속될지가 관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6개월 만에 브레튼우즈체제 이후 50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이후 30년을 합쳐 80년간 유지된 자유무역 체제를 붕괴시켰다. EU가 추진해온 비교우위를 활용하는 자유무역은 설 자리가 없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소개된 아테네 대표의 말처럼 “강자는 할 수 있는 바를 하며 약자는 감내해야 하는 바를 수용하는” 힘의 논리의 시대임을 절감한다.

미국은 우방국에 더 가혹했다. 각국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정책을 분리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양국관계인 미중 관계의 영향은 압도적이다. 단 중국이 단기간 내 미국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능가하고 74년 후 패권국 영국을 대체했다. 중국의 GDP는 아직 미국을 따라잡지 못했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저물어가지만 역사적 대변환이 곧 오지는 않는다.

다자주의 협력 이끄는 유럽의 선택 주목

EU는 미국 중국과 함께 주요 3개국(G3)으로 불린다. ‘브뤼셀 효과’라는 규범을 만드는 힘이다. EU는 27개국 간 합의로 외교안보 정책을 만드는 만큼 극단적 입장을 취하기 어렵다. EU의 입장은 온건해서 약하게 보이지만 합리성과 지속성이 있다. 미국과의 상호관세 협상에서도 이런 힘을 보였다. EU 회원국은 두가지뿐이다. 작은 나라와 자신이 작은 줄 모르는 나라다. 단합하지 않으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줄 안다.

웨스트팔리아 체제가 세력균형을 통해 근 400년 간 유지해온 국제질서가 변화될 수 있는 때에 EU는 역사의 옳은 편에 서서 다자주의 협력을 이끌어가고자 한다. 한국도 미중갈등 속에서 EU의 선택을 주목해야 한다. 극단을 피하고 원칙을 지키며 연대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EU의 전략은 중견국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형진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연구원,

전 주 벨기에유럽연합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