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APEC 이후의 미중 관계

2025-11-04 13:00:02 게재

지난주 미중 정상이 부산에서 얼굴을 맞댔다. 구속력을 가진 합의문이 채택된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은 중국에 대한 관세율을 낮췄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를 일시 중단함과 동시에 미국산 대두 수입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번 정상 회담은 미중관계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서로간에 내재돼 있는 적대성을 제거할 수는 없겠지만 갈등이 표출되는 양상은 바뀔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 모두 일시적일지라도 나름의 출구전략이 필요한 국면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공급망 재편은 미국 입장에서도 치뤄야 할 비용이 크다. 무엇보다도 제조업을 미국으로 이식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지난 9월 조지아주의 배터리 공장 건설 과정에서 나타났던 한국 노동자 구금 사태는 미국이 가진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였다.

미중 모두 출구전략 필요했던 국면에서 정상회담

파운드리반도체 생산업체인 대만 TSMC를 비롯해 미국에서 공장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는 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 내 인력 부족과 이에 따른 운영비용 증가(operation cost)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자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감내해야 할 비용이 미국 입장에서도 너무 클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을 인위적으로 재편해 중국의 성장을 억제하겠다는 미국의 의도도 제대로 관철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이 개발한 인공지능 딥시크 충격과 화웨이 샤오미 등의 약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소위 ‘레드테크’의 성장세가 놀랍다. 중국 기업들이 이뤄내고 성취는 효율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압도적인 자원 투입에서 파생된 것으로 봐야 한다. 화웨이의 창업자인 런정페이는 말했다. “화웨이의 목표는 주주에게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통신장비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핵심 기업들의 약진과 거시경제 지표의 부진이 공존하고 있다. 중국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디플레이션은 기업과 경제의 괴리를 설명하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중국의 디플레이션은 구조적이다. 중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동월 대비 -0.3%를 기록하면서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에 대해 선행성을 가지는 생산자물가지수는 2022년 10월부터 3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은 ‘수요가 약하거나, 공급이 과할 때’ 현실화된다. 중국은 두 가지 요인이 모두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민간소비는 매우 약하고, 기업이 만들어내는 공급은 너무도 많다. 공급단의 어떤 플레이어들은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싼 가격에 중간재를 공급하고 있고, 누군가는 이로부터 수혜를 입고 있다. 수혜를 보는 기업들은 사실상 보조금을 지급받고 있는 것과 같다.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적 자원의 투입과 산출의 효율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압도적인 자원 투입을 통해 미국의 기술 봉쇄를 뚫고 있지만 중국도 이를 위해 큰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미중갈등 장기화 가능성 높지만 극단적 대립은 아닐 듯

미국과 중국 모두 절충점을 찾아야 할 국면에서 정상회담이 열렸다. 고율 관세와 직접적 수출 제한은 양국 모두에게 부담이 크기 때문에 미중갈등은 이와 다른 외피를 쓰고 전개되지 않을까 싶다. 큰 방향은 중국의 미국산 상품 수입 확대와 이를 위한 내수 부양, 위안화의 평가절상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지속됐던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참고할 만하다. 냉전기간 중 미국과 소련의 긴장이 가장 고조됐던 시기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였다. 당시 핵전쟁으로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증폭됐다. 다행히도 물리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냉전은 소련이 해체됐던 1991년까지 지속됐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도 장기화될 개연성이 높지만 그 양태는 올해 우리가 경험한 바와 같은 극단적 대립은 아닐 수도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