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핵 잠수함 승인, 잠긴 ‘핵 빗장’ 열리나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이 결단해주면 좋겠다”고 공개 요청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날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밝히면서 핵추진 잠수함 건조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우리가 거듭 요청해 왔던 것이 받아들여진 것이기에 큰 틀에서 대환영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짚어야 할 대목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 전세계로 생중계되는 한미 정상회담 모두발언을 통해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요청한 것은 사전에 어느 정도 ‘공감’과 ‘조율’이 돼 있었다 하더라도 매우 이례적인 ‘연출’이었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10년 이상 긴 시간이 소요되고 곳곳에 난관이 도사려 있는 지난한 프로젝트이기에 그동안의 물밑작업 성과를 바탕삼아 아예 시작부터 완전 공론화시켜 기정사실화하고 일을 빨리 진척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배어있다.
‘원자력기술 자립’ 추구할 교두보 확보에 의미
핵 잠수함 건조승인 요청은 트럼프정부의 강압적 관세압박과 무리한 대미투자 요구에 맞서면서 정부가 준비해온 협상카드의 하나다. 오랜 기간 우리 발에 족쇄를 채워온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허용해줄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핵 잠수함 건조 승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찌보면 우리로선 거의 포화상태에 다다른 원자력발전소 핵폐기물 처리가 다급한 상황이어서 우라늄농축,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가 더 시급한데 물밑협상 결과를 고려해 우선적으로 핵 잠수함 건조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협상을 담당한 위성락 안보실장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도 “일정한 방향성에 대한 양해가 이뤄져 있다”고 말해 양국간 어느 정도 협의가 진행됐음을 암시했다. 우라늄농축과 핵연료 재처리에서 일본 수준의 권한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강고했던 미국의 반대기류를 감안하면 마음을 놓거나 섣불리 기대할 일이 결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으로 숙원인 핵 잠수함 건조사업은 일단 물꼬를 텄으나 건조를 맡을 조선소를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로 콕 집어 지목하면서 애초 우리 구상에 차질이 생기게 됐다. 이 대통령은 우리의 재래식 잠수함 건조기술과 소형원자로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국내조선소에서 자체 핵잠수함 건조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연료’만 공급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미 조선업 재건을 노리는 트럼프가 ‘조건’을 달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필리조선소는 잠수함 제조경험이 없는데다 설비나 숙련노동자가 부족해 생산일정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크다. 비용도 더 든다. 핵 잠수함을 4척 정도 건조할 계획이므로 향후 협의를 통해 필리조선소와 국내조선소간의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업무분담’ 방안 등을 강구해야 할 터이다. 여러 난관이 도사려 있지만 그동안 굳게 잠겨 있던 ‘핵 빗장’이 조금이나마 열리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이다. ‘원자력기술 자립’을 추구할 교두보를 확보한 것에 일단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
‘미국 조선소서 건조’ 지목에 따르는 난제들 슬기롭게 헤쳐가길
수심이 낮고 작전반경이 좁은 한반도 해역에서 많은 예산을 투입해 핵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신중론도 나올 수 있다. 또 이제껏 우리가 추구해 왔던 ‘핵 비확산 원칙’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와 논리적 충돌을 일으킨다는 원칙론적 반대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압박이 심하고 북한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겠다고 발표한 마당에 이에 대처할 대응책을 마련해 국민의 현실적인 안보불안감을 누그러뜨릴 필요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함께 ‘자주국방’을 다져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경계심 고조가 자칫 동북아에 ‘핵 경쟁’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중국의 반발이 우려되는데, 시진핑 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일단 한고비를 넘겼지만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우리의 처지를 진솔하게 설명하며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미중 사이에서 국익에 바탕을 둔 실용외교, 균형외교가 빛을 발할 터전을 마련하는데 힘써야 한다.
핵 잠수함 건조는 이제 첫발을 떼었을 뿐이다.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차질이 빚어지거나 시간이 지체되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기 바란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