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땅으로 둘러싸인 섬’에서 찾는 다변화외교의 새지평
82억 사피엔스가 살아가는 지구는 바다 70%, 육지 30%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카리브공동체(CARICOM), 극지 등의 지역협의체가 있고 바다 없는 나라들의 모임인 내륙국가 그룹도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국가들 간의 연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파라과이는 땅으로 둘러싸인 섬이다.”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한 문호 아우구스토 로아 바스토스(Augusto Roa Bastos)의 은유적 표현은 내륙국가의 고독과 고립감을 드러낸다. 파라과이 국명은 ‘바다를 만드는 강의 어머니’라는 뜻을 지닌다. 바다에 대한 역사적 갈증과 간절함이 아니겠는가.
현재 전세계에는 44개국의 내륙국가가 있다. 그중 파라과이 몽골 등 32개국은 내륙개도국(LLDCs, Landlocked Developing Countries)이며 28개국은 바다가 없음에도 유엔해양법협약 당사국이다. 이 협약 제125조는 내륙국가들에게 해양 접근권과 경유국 통과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내륙국가 35%는 해군도 보유하며 바다로의 인연과 욕망을 발신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리히텐슈타인은 내륙국가로 둘러싸인 이중 내륙국이라는 독특한 지리에 처해 있다.
내륙개도국, 지리의 한계로 경제적 취약
내륙개도국(LLDCs)을 합하면 약 6억명의 인구와 남극대륙보다 큰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정학으로 인해 교역·물류·관광·기후변화 대응·이동성과 연결성 등 국가 발전의 핵심 분야에서 구조적인 제약을 겪고 있다. 이들은 이사갈 수 없는 지리의 포로인 셈이다. 와칸·술왈키 등의 지리적 회랑 문제가 자주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내륙개도국은 항구까지 평균 1370km를 이동해야 하며 인접 경유국에 비해 두배 이상의 물류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전체 영토의 54%가 건조지역에 속하고 기후위기에 취약하며 인구의 23.9%는 하루 1달러90센트 이하로 생존하는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유엔 차원의 내륙개도국 회의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3차례에 머물렀고 모두 공적개발원조(ODA)의 대상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륙개도국은 풍부한 자원과 전략적 위치를 바탕으로 가능성을 지닌다. 어쩌면 지리가 저발전의 원인이라는 것 자체가 과장일 수 있다. 내륙 선진국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을 보라.
유엔은 내륙개도국의 잠재력을 주목하며 바다에 접하지 않았지만 발전의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강력한 응원의 메시지를 발신했다. ‘해안선은 없어도 한계는 없다(No coasts, No limits)’. 예컨대 볼리비아는 리튬과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보고이며 중앙아시아 스탄국가들은 유라시아 에너지·물류 회랑의 핵심축이다. 스위스는 세계 최대급 해운회사 MSC를 통해 글로벌 컨테이너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바다가 없어도 바다를 움직일 수 있다’는 역발상의 증거가 아닐까. 내륙국가가 혁신과 전략을 통해 세계 물류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정학의 대가 로버트 카플란의 명서 ‘지리의 복수(The Revenge of Geography)’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지만 전략적 사고와 발전 전략이라는 더 본질적인 요소를 담아내야 할 것 같다. 진정한 장애물은 지리적 고립이 아니라 마음의 고립일지 모른다. 혁신과 상상력의 결핍으로 만들어진 ‘마음의 섬’이야말로 스스로 만든 감옥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고 동행할 동반자를 찾아야 한다. 새로운 파트너십 모색은 외교 다변화와 질적 도약을 위한 핵심 기획이다. 내륙개도국과의 전략적 동행을 통해 외교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양자관계에서 내륙국가와의 협력이 있지만 다자차원에서의 구조적 접근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태평양도서국 카리브해 극지 사례처럼 내륙국가 전담 외교채널을 신설하고 특별대표를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 한-내륙개도국 정례 고위협의체를 창설해 유엔 아프리카 정상회의 중앙아시아 회의 등을 계기로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다. 주요인사 초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개발협력을 확대하는 등 상생 발전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도 의미 있는 접근이 될 것이다.
지각변동 가능성 염두에 둔 외교전략 필요
내륙개도국과의 협력은 국익과 기회 확대의 노력이다. 지정학이 현상유지의 벽이라면 혁신은 현상타파의 길이다. 극지의 얼음이 녹고 사막이 옥토로 변할지 모를 기후위기 시대다.
지각변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외교전략에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책략이고 외교적 상상력이다. 대륙의 중심부이지만 발전의 주변부, 그 땅으로 둘러싸인 섬들과 어깨동무 하도록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