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고공행진에 서민 생활물가 ‘빨간불’
원화가치 하락으로 원재료 수입가 상승
기름값·외식비 오르면서 서민생활 압박
연일 치솟는 환율에 서민 생활물가에 경고등이 켜졌다. 고환율에 원유를 비롯한 원재료 수입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가격까지 밀어 올리고 있어서다.
서울 휘발유 가격은 약 9개월 만에 1800원대를 넘어섰다. 지난달 외식 선호 메뉴 8종 평균 가격은 작년 연말 대비 3.44% 올랐다. 내란정국을 틈타 슬금슬금 가격을 올린 가공식품류도 매달 상승세다. 식탁물가가 민생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미국 증시 급락 등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가 강달러를 부추기며 원화약세 압력이 한층 더 거세졌다. ‘강달러→원화가치 하락→수입가격 압박→소비자가격 상승→민생 압박’이란 악순환 고리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24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에 따르면 최근 고환율 추세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휘발유 가격이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1월 셋째 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리터(L)당 1729.7원을 기록했다. 지난주보다 25.8원 올랐다. 경유는 리터당 1636.6원으로 38.5원 뛰어 2023년 11월 넷째주(1607.8원) 이후 2년 만에 다시 1600원대를 기록했다. 3주 연속 오름세다.
먹거리 물가 오름세도 심상찮다.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외식 선호 메뉴 8종 평균 가격은 지난해 12월 대비 3.44% 상승했다. 특히 칼국수는 평균 9385원에서 9846원으로 4.91% 올라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2015년 10월(6545원)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50% 넘게 올랐다. 평균 가격이 1만원에 육박하고, 일부 식당에서는 한 그릇에 1만1000원이 넘는 곳도 적지 않다.
삼계탕값은 작년 12월 1만7269원에서 지난달 1만8000원으로 4.23% 올라 칼국수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올랐다. 삼계탕 평균 가격은 2017년 6월 1만4000원, 2022년 7월 1만5000원, 2023년 1월 1만6000원, 작년 7월 1만7000원, 올해 8월 1만8000원선을 돌파했다.
휘발유 가격과 외식비 상승이 소비자물가 전반을 밀어올리는 추세다. 유가가 오르면 물류·유통비가 줄줄이 뛰어 연말 물가불안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2.4% 상승했다. 이중 석유류는 4.8% 올라 전체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식탁물가 상승의 배경은 강달러와 원화가치 하락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실질실효환율(REER, Real effective exchange rate) 지수는 89.09(2020년=100)를 기록했다. 한달 전보다 1.44p 하락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수준까지 떨어졌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컸던 올 3월(89.29)보다도 낮고,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8월(88.88) 이후 16년2개월 만의 최저치다. REER는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화폐보다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졌는지를 나타내는 환율이다.
이에 따라 원화가치는 주요 국가 중 가장 많이 하락했다. 이달 들어 지난 22일까지 2.62% 추락했다. 일본 엔화는 이 기간 1.56% 떨어졌다.
내국인의 해외주식 투자액이 올해 들어 급증한 것도 원화가치 하락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은 국제수지표에 따르면 올해 1~9월에만 내국인의 해외주식 투자액(증권투자 주식부문)은 718억달러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한은·국민연금 등이 조만간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비공개 대책회의를 갖기로 했다. 특단의 대책이 나올 지 주목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