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양자컴퓨팅 예보 연구중…한국은 뒷걸음질
기후모델 불확실성 해소 위해 활용 가능성 … 윤석열정부 연구개발비 삭감 여파, 기후위기 대응 투자 공백 우려
짧은 장마철과 이른 더위 시작, 무더위와 집중호우의 반복. 기상청이 분석한 2025년 여름철 기후 특성이다. 올가을에도 이상기후 현상은 계속됐다. 2009년 이후 16년 만에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주지 않은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문제는 빈번해지는 극단적인 날씨가 올해만의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역별로 폭염이나 집중호우 가뭄 등 여러 극한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기후 예측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11월 26일 유희동 연세대학교 대기과학과 특임 교수는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해상도를 2배만 올려도 슈퍼컴퓨터 성능은 10배가 필요하고 10배 높이면 약 1만배의 성능이 소요되는 등 해상도 개선에 따른 계산량 증가가 기하급수적”이라며 “현 기상 예보에 활용하는 슈퍼컴퓨터는 중앙처리장치(CPU) 방식으로 설계돼 있어 인공지능에서 활용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방식으로 소프트웨어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전력과 냉각수 등 물리적 한계가 큰 만큼 양자컴퓨팅 시대를 선도적으로 준비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며 “큐비트 방식의 양자컴퓨터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 중이고 해외에서도 예보에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큐비트는 0과 1, 두가지 상태만 있는 일반 컴퓨터의 비트와 달리 0과 1이 동시에 존재 할 수 있는 양자 비트로 양자컴퓨터의 기본 연산 단위다. CPU는 복잡한 계산을 순차적으로 빠르게 처리하는 ‘한명의 뛰어난 연산 전문가’ 같은 방식이다. GPU는 단순한 계산을 동시에 대량으로 처리하는 ‘수천명의 작업자 집단’ 같은 방식이다. 인공지능과 날씨 예보처럼 엄청난 양의 계산이 필요한 작업은 GPU가 유리하다. 하지만 기존 예보 모델 등은 CPU 방식을 기반으로 해 전환이 어렵다.
◆양자컴퓨팅, 기후 모델 정확도 높일 잠재력 입증 =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1982년 한 강의에서 “자연 현상은 너무 복잡해서 기존 컴퓨터로는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자연을 그대로 이용해보면 어떨까? 양자역학 효과를 계산에 활용하는 방식 말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매번 예보 정확도 등으로 대중의 비판을 받지만 기상 예측은 대기 해양 육지 등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연립 편미분방정식으로 풀어내고 시뮬레이션 하는 등 쉽지 않은, 수많은 과정들을 거쳐 나온다. 편미분방정식은 대기와 해양 흐름을 설명하는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 등이다.
더욱이 대기는 본질적으로 혼돈 시스템이다. 초기에 작은 오차가 있었다면 그 오차 범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폭이 돼 정확도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구시스템모델은 여전히 큰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어 지역별 상세한 기후 전망을 내놓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양자컴퓨팅이 기후 모델 정확도를 높이고 계산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1일 국제학술지 ‘환경 데이터 과학(Environmental Data Science)’의 논문 ‘기후 모델링을 위한 양자컴퓨팅의 기회와 도전’에 따르면, 양자컴퓨팅은 기후 모델링의 여러 난제들을 해결할 잠재력을 지녔다. 이 논문은 독일 항공우주센터(DLR) 미어크 슈바베 연구원과 △IBM △미국 컬럼비아대학 등이 함께 진행한 분석을 담았다.
기후 모델은 대기 해양 육지 등을 수많은 격자들로 나눠 물리 법칙에 따라 계산한다. 문제는 난류나 대류처럼 격자보다 작은 규모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아격자 과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모델 결과에 오차가 생길 수 있다. 아격자 과정은 구름 형성이나 대류 등 기후 모델의 격자 크기보다 작은 규모에서 일어나는 물리 현상들을 근사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물론 해상도를 높이면 이런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계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수 킬로미터 해상도 모델은 계산 비용이 매우 높아 대규모 앙상블 실험이 어렵다. 저장 공간도 고민거리다. 최근 머신러닝을 활용한 하이브리드 기후 모델이 주목받지만 연구진은 양자컴퓨팅이 추가적인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제언했다. 머신러닝은 데이터로부터 패턴을 학습하는 인공지능 기술이다. 앙상블 실험은 초기 조건을 달리하는 반복 실험이다.
연구진은 양자컴퓨터의 네 가지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기후 모델의 핵심인 편미분방정식을 양자 알고리즘으로 풀면 기존 방식보다 지수적으로 빠를 수 있다. 둘째, 양자 신경망은 적은 매개변수로도 복잡한 함수를 표현해 아격자 과정을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 셋째, 양자 최적화 알고리즘으로 전문가 경험에 의존하던 모델 매개변수 조정 과정을 자동화할 수 있다. 넷째, 양자 생성모델은 복잡한 기후 변수의 확률분포를 효율적으로 표현해 모델 분석에 유용하다.
하지만 실용화까지는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현재는 큐비트 수가 수백개 수준인 ‘노이지 중간 규모 양자 시대’로 노이즈가 많고 복잡한 계산 수행이 어렵다. 기후 데이터를 양자 상태로 효율적으로 변환하는 방법도 아직 불명확하다. 연구진은 단순화된 기후모델이나 구름 분류 같은 간단한 문제부터 시작하는 단계적 접근을 제안했다. 기후 과학자와 양자컴퓨팅 전문가 간 긴밀한 협력이 이뤄진다면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양자컴퓨팅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일본 등 예측 시스템 개발 박차 = 해외에서는 양자컴퓨팅을 활용해 기후 예측을 할 수 있을지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일본 치바대학교는 2024년 6월 세계 최초로 양자 어닐링 머신을 이용한 데이터 동화 기법 개발에 성공했다. 4차원 변분 데이터 동화(4DVAR) 방법을 양자컴퓨터에 적용해 기존 방식의 주요 계산 병목현상을 해결했다는 평가다. 양자 어닐링 머신은 최적화 문제를 푸는 데 특화된 양자컴퓨터의 한 종류다.
날씨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슈퍼컴퓨터 모델 예측값과 실제 관측 데이터를 결합해야 하는데, 이를 데이터 동화라고 부른다. 4DVAR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 수 시간의 관측 데이터까지 모두 활용해 가장 정확한 초기 상태를 찾아내는 고급 기법이다.
문제는 이 계산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기존 컴퓨터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치바대학교는 이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했고 이는 기상 예측뿐 아니라 기후 모델의 초기 조건 설정에도 적용될 수 있어 의미가 있다. 물론 이 연구는 40변수를 가진 단순화된 로렌츠 모델로 실험한 것으로, 실제 기상예보 시스템은 변수 수억개를 다뤄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물리적 양자 어닐러의 논리 큐비트 수는 수백개 수준으로 실제 수치예보모델의 대규모 계산 요구사항과는 거리가 멀어 고차원 모델에 적용하려면 차원 축소 기법 등이 필요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25년 8월 새싹기업 ‘플래닛’에 양자영감 인공지능 시스템 ‘큐빗캐스트’ 개발 지원을 결정했다. 이 시스템은 기존 10일 예보 한계를 넘어 2주에서 2년까지 장기 예측을 목표로 하며, 양자물리학에서 영감받은 알고리즘을 일반 컴퓨터에서 구현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다.
독일계 국제 화학기업 ‘바스프’는 2022년 프랑스 양자컴퓨팅 새싹기업 ‘파스칼’과 협력해 양자 알고리즘의 기상 예측 적용 가능성을 연구했으며, 영국 기상청도 양자컴퓨팅의 기상 시뮬레이션 적용에 관심을 나타냈다.
◆기술전환기, 격차 벌어지지 않도록 선제적 투자 = 우리나라는 이러한 흐름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상청은 2023년 수치예보체계를 양자컴퓨터에 가동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3년 6월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연구개발(R&D)은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이 여파에서 해당 연구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11월 26일 기상청 관계자는 “2023년에 양자컴퓨터에 수치예보모델을 가동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려고는 했지만 실제 이뤄지지는 않았다”며 “현재도 진행되는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팅의 기후 모델 등 활용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아예 이뤄지지 않다 보니 실제 대한민국 상황에서 도움이 될지 여부조차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론 양자컴퓨터를 예보에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신중론도 있다. 미국기상학회의 논문 ‘날씨와 기후 예측을 위한 양자컴퓨터: 장점과 단점, 그리고 노이즈 문제’에서는 양자컴퓨팅이 단기 날씨 예보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자컴퓨터에서 계산 결과를 읽어내는 과정의 효율성 문제가 실용화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팀 파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수 연구팀이 진행했다.
이 논문에서는 30큐비트 양자컴퓨터로 10억개 변수를 입력할 수 있지만, 계산 결과는 30비트 정보만 읽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 기상 예보에는 수백만개 변수 값이 필요한데, 이러한 출력 제한은 ‘극복 불가능한 병목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양자컴퓨터가 특화된 계산 작업에서는 유용할 수 있지만 미래에도 기상 예보의 보조 도구로만 활용 가능하며 주력 시스템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논문에서는 “양자컴퓨팅 새싹기업들의 관심에 비해 실제 기후 모델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존 슈퍼컴퓨터와 딥러닝의 잠재력에 더 기대가 크다”고 언급했다.
물론 양자컴퓨팅의 기상·기후 분야 활용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리지만 주요 선진국들은 장기적 잠재력에 주목해 투자 중이다. 양자컴퓨팅 연구는 막대한 초기 투자와 장기간의 기초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다. 민간 기업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 주도 연구 개발이 불가피하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이 국가 안보 차원의 과제로 부상한 상황에서 차세대 예보 기술에 대한 선제적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기술 전환기에 연구 공백이 길어질수록 격차는 벌어지고 뒤늦게 따라잡으려 해도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