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립 범어도서관
인문학, 고전 탐독에서 일상 실천까지…지역 기관과 적극 협력
대구시 수성구 구정철학과 연계해 ‘도서관과 동행하는 행복’ 추구 … 전국 공모 백일장·야외도서관 호평, “주민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갈 필요성”
문화체육관광부는 10월 22일 제62회 전국도서관대회·전시회 개회식에서 2025년 도서관 운영 유공 우수도서관으로 48곳을 선정하고 정부포상 등을 수여했다. 대통령 표창 2곳, 국무총리 표창 6곳, 문체부 장관 표창 33곳, 교육부 장관 표창 7곳이 선정됐다. 2일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대구 수성구립범어도서관을 탐방했다.
대구 수성구립범어도서관은 ‘도서관과 동행하는 행복’을 추구한다. 인문학을 운영의 중심에 두고, 주민의 일상 속으로 도서관을 가져오는 다양한 실험을 이어온 곳이다. 이러한 노력이 올해 국무총리 표창으로 이어졌다.
◆국제자료실 등 다양한 공간 = 이날 방문한 어린이실은 안정적인 색감과 편안한 분위기로 조성됐다. 특히 유리벽면에 스페인 작가 조르디 핀토가 그린 그림이 더해져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어린이실 내 ‘브레인룸’은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보드게임을 즐기며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공간으로 눈길을 끌었다. 또한 대구아동청소년작가협회와 협력해 대구 지역 작가들의 책을 선보이는 전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용자들이 실제로 전시된 책을 많이 읽는 효과를 가져왔다.
국제자료실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원서를 비롯해 다양한 해외 잡지를 갖추고 있었다. 영어 원서만 5만종이 넘었는데 이용자들이 외국어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 국제자료실을 강화하고 있다. 영어 원서 읽기 수준을 진단할 수 있는 테스트를 무료로 지원하는 것도 장점이다.
2층 로비에서는 스마트팜을 운영하고 있다. 물 영양 빛의 공급량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스마트팜으로 상추 등 채소와 허브류를 재배한다. 수분과 온도, 광량 변화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며 수확한 작물은 나눔 행사로 이어졌다.
입구가 4개인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용자들이 원하는 공간으로 바로 방문할 수 있도록 관리는 어렵지만 입구를 여러 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영상 촬영과 편집이 가능한 미디어창작소, 5층 높이에서 수성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옥상정원, 대구 관련 향토자료와 치매 관련 자료 등 다양한 공간과 자료들이 이용자들을 맞이했다.
범어도서관은 최근 3년간 연평균 3억3000만원 규모의 도서를 구입하며 특히 국제자료를 강화하고 있다. 희망도서 반영률을 48%까지 확대해 이용자 요구를 반영하고 있으며 지역서점 희망도서 바로대출제에 참여하는 지역서점을 기존 2곳에서 5곳으로 늘려 지역과 상생 효과를 키웠다. 지역서점 희망도서 바로대출제는 이용자가 원하는 도서를 지역서점에서 새 책으로 바로 대출하고 다 읽은 후 도서관에 반납하는 서비스다.
◆10개년 계획 ‘수성인문학’ = 범어도서관의 ‘도서관과 동행하는 행복’은 대구시 수성구의 구정철학인 ‘품격 있는 사람, 배려하는 도시, 행복 수성’을 도서관 서비스에 구현하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범어도서관은 인문학을 중시하고 있다. 최 관장은 “품격과 배려, 행복의 기반에는 인문학이 있다”면서 “인문학을 도서관 운영의 중심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범어도서관이 꾸준히 이어온 대표 프로그램들은 모두 ‘인문학 실천’이라는 비전 아래 묶인다. ‘수성인문학’은 10개년 계획으로 2개년씩 주제별로 강의가 진행된다. 경북대 고려대 등 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자문단에서 추천한 석학들이 철학 문학 역사 등을 맡아 깊이 있는 고전 탐독 강연을 진행한다. 대구의 대표 철학 프로그램인 목요철학인문포럼과 자연과의 조화를 담아내는 건축조경인문학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의 인문학에 대한 배움이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범어도서관은 관련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인근 자연을 걸으며 증폭 마이크를 통해 나무가 자라는 소리, 새싹이 돋아나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교감하는 사운드 워킹 프로그램과 건축과 조경을 주제로 한 인문학 탐방 등이 그것이다.
최 관장은 “인문학을 강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일상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이 보유한 자원 적극 활용 = 수성인문학제는 수성구 전역의 문화 공간과 도서관이 함께 만드는 주민 참여형 인문학 축제다. 축제에서는 해마다 ‘올해의 수성북’을 선정해 함께 읽기를 진행하고, 도서관에서 백일장을 진행해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해왔다. 올해엔 온라인을 통해 수성못 등 수성구의 장소성을 반영한 주제로 진행하는 전국 공모 백일장을 운영했다. 주제에 수성구의 장소성을 담아 자연스럽게 이에 대한 홍보 효과도 가져올 수 있었다.
이는 최근 야외도서관으로도 확장됐다. 야외도서관은 실내를 벗어나 지역의 자연과 일상 속에서 책을 경험하게 하려는 실험에서 출발했다. 야외도서관은 수성패밀리파크, 수성못 상화동산, 무학숲 등 3곳에서 순차적으로 운영했다. 수성패밀리파크엔 물놀이장이 있어 여름에 물놀이장 인근에 야외도서관을 열고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접할 수 있게 했다. 무학숲에서는 사운드 워킹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해 호응이 높았다.
최 관장은 “책을 읽으라고 자꾸 이야기하는 게 강요처럼 들릴 수도 있다”면서 “그래서 ‘예쁜 공간에서 책 한번 읽어보지 않을래?’ 이런 권유로 접근을 했다”고 말했다.
범어도서관은 ‘도서관 밖 도서관’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교실과 도서관을 넘어 지역의 실제 자원을 통해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경제·금융과 정치·미디어를 주제로 운영한다. 수성구에는 iM뱅크(옛 대구은행) 본사를 비롯해 여러 증권사와 보험사의 지사가 밀집해 있어 학생들은 이 기관들을 방문하며 경제와 금융의 개념을 익혔다. 정치·미디어의 경우 어린이들이 직접 정당을 구성하고 공약을 개발했다. 이어 구의회에 방문해 의원에게 공약을 전달하거나 대구지방법원 모의법정에서 재판을 체험하는 등 현장 중심 교육을 도입했다.
최 관장은 “학교에서만 교육받는 게 아니라 지역에 위치한 기관이 보유한 우수한 기반을 활용해 현장에서 체험하는, 살아있는 교육을 해 보자는 것이 출발점”이라며 “지역이 곧 학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고 말했다.
◆77개 기관과 협력 중 = 협력 네트워크도 범어도서관의 중요한 축이다. 범어도서관은 2024년 기준 77개 기관과 연계하고 있다. 학교 금융기관 법원 언론사 문화기관 대학뿐 아니라 인근 시청자미디어센터와의 협업을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도서관 내 미디어창작소에서는 시청자미디어센터와의 공동 프로그램을 통해 영상 제작, 보도자료 실습, 뉴스 읽기 교육 등 주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한 중고급 프로그램은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연계한다.
운영 체계도 새롭게 정비됐다. 범어도서관 등 수성구 내 도서관을 위탁 운영하는 수성문화재단은 2024년 도서관본부를 신설하고 그 아래 범어도서관 등 각 거점도서관들을 두는 형태로 조직을 개편해 수성구 내 도서관 정책의 일관성에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최 관장은 “도서관이 주민의 일상 속으로 얼마나 더 깊이 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품격 있는 사람, 배려하는 도시, 행복 수성’을 지향하는 도서관이 되기 위해서는 공간 장서 프로그램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돼야 한다”며 “앞으로는 인문학, 미디어, 지역 자원을 통합해 주민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플랫폼을 더 단단하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대구=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사진 이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