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고환율 난관에 봉착한 이재명정부

2025-12-04 13:00:10 게재

원화가치가 크게 하락, 고환율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이재명정부가 집권 후 최대의 난관에 봉착했다. 원달러환율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은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1470원 안팎에서 등락, 좀처럼 내려올 기미가 없다. 미 달러화의 강세 때문이라기보다는 국내 통화량 증가와 저성장 고착, 미국 투자 확대, 해외증권 투자 등으로 달러 수요가 급증한 결과다.

원화가치는 외환위기 당시 반토막난 적도 있지만 1998년 연평균 환율은 1395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계엄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고비를 넘겼고, 수출 호조로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환율이 그 때보다 높은 수준에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고환율의 여파 시차를 두고 실물 경제에 타격 줄 전망

지금의 고환율은 구조적 원인에 의한 것이어서 상당 기간 지속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환율이 1400원대 후반에서 맴돌다가 내년에는 1500원을 넘어 1600원대로 치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이로 인해 국내 물가와 금리체계가 불안해지면서 가계와 기업, 특히 서민과 중소기업들이 받을 충격이 무척 클 것으로 예측된다.

원화값 하락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시중 통화량이 크게 늘어난 점과 내년까지 1%대 저성장에 머무는 등 경제 펀더멘털의 약화가 지적된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인한 내수침체를 유동성 증가로 해결해 왔다. 또 연간 약 2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으로 달러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기관과 개인 투자자의 해외증시 투자도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2022년 중반부터 우리보다 높아진 미국 금리가 자본시장에서 ‘코리아 엑소더스’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연 3.75~4.00%로 우리의 2.50%보다 높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기업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은 채 움켜쥐고 있고 외환당국의 달러 매도 개입 여력도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고환율이 고착화하고 있다.

고환율의 여파는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전망이다. 이미 휘발유와 수산물 등 일부 품목의 가격이 요동치고 있지만 통상 환율상승은 3~6개월 뒤 물가에 반영되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물가에 반영될 전망이다.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은 생산비 증가로 기업의 수익성 약화를 초래하고 전반적인 물가상승은 소비위축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고환율은 물가상승에 그치지 않고 금리까지 밀어 올릴 수도 있다. 금리를 올리게 되면 한국 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침체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

특히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원자재와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한 뒤 수출하는 구조여서 환율이 높아지면 수입, 수출기업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또한 고환율로 인한 달러 환산액 감소에 이르면 내후년으로 예상되는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도 지연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럴수록 정부의 환율 안정화 대책 강도가 세질 것이고 경제 펀더멘털이 반도체 경기 활황으로 점차 개선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미 연준이 12월에 이어 내년에도 1~3차례 금리를 낮출 것으로 보여 한미 금리역전 격차가 축소되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을 일부 막는 효과도 기대된다.

경제 체질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해외기업 국내유치에 적극 나서야

고환율은 한국 경제에 주는 위험신호다. 원화 유동성을 줄여야 하는 것이 시급하나 여야 간에 합의 통과된 내년도 예산이 팽창 적자예산인 데다 지방선거마저 예정돼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반도체와 조선을 제외한 다른 업종과 중소기업들은 상당수가 내수 부진과 미국발 관세 부과, 중국의 저가 공세 등으로 부실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면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4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의 대출 연체율이 치솟고 있고 이들의 올해 대손충당금 적립 규모가 4대 금융지주 합산 통계가 시작된 2019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비록 가능성은 낮다고 하나 환율 불안을 이용한 핫머니의 준동에도 경계가 필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강력한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해외기업의 국내유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와 함께 필요시 대미 투자를 한시적으로 연기하거나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 체결을 재차 시도하는 등의 강수도 적극 검토해야 하겠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