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36 굴업도 둘레길

캠핑의 성지에 깃든 특별한 섬의 역사

2025-12-05 13:00:02 게재

굴업도는 캠핑의 성지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특별한 가치가 있는 섬이다. 그 가치를 알고 간다면 캠핑도 더 의미가 커지지 않을까.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한 굴업도(掘業島)는 8000만년 전 화산 폭발 후 그 재가 날아와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화산 섬이다. 그래서 해변에는 화산활동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 바위가 갈라져 부서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도 선명히 기록되어 있다. 굴업도 해안은 그 자체로 생생한 지리 교과서다. 이 아름다운 섬이 한때는 핵폐기장 유치로 몸살을 앓은 적도 있다. 굴업도는 또 민어 파시로 유명했던 어업 전진 기지이기도 했다.

핵폐기장 유치 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섬은 또 거대기업의 리조트로 전락할 위험에 빠지기도 했었다. 굴업도의 자연환경이 아름답다는 반증이다. 사진 섬연구소 제공

해안선 길이 12㎞인 굴업도는 해발 100m 내외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지형이다. 물이 잘 빠지는 모래 땅이라 한때는 땅콩 재배를 많이 했었다. 굴업도는 큰 섬과 작은 섬 두개가 장수리라는 모래밭으로 연결돼 있다.

일제시대에는 이 장수리에 해상 시장, 파시촌이 들어서기도 했었다. 굴업도 바다가 인천의 대표적인 민어 어장이었기 때문이다. 파시 때면 수천척의 어선과 어부들, 상인들 수만명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큰 섬에는 큰 마을과 작은 마을이, 작은 섬에는 목금이 마을이 있었지만 목금이 마을과 작은 마을은 폐촌이 된지 오래고 이제는 큰 마을 하나만 남았다.

목금이 마을이 있던 작은 섬에는 덕물산(126m)과 연평도산(123m)이 있는데 이들 이름은 산이 각각 덕물도(덕적도)와 연평도를 바라보고 있어서 붙여진 것이다. 지금은 두 섬을 연결하는 장수리 모래톱이 낮아져 만조 때면 한두 시간씩 물에 잠기곤 한다.

썰물 때 굴업도와 연결이 되는 무인도 토끼섬은 한때 주민들이 토끼를 풀어 키워 토끼섬이라 불린다. 토끼섬은 20m 높이의 절벽에 3~5m 깊이로 우묵한 ‘터널’들이 파져 있다. 터널을 판 것은 굴삭기가 아니다. 염분이다. 이 터널들을 ‘해식와’라 한다.

해식와는 노치(notch)라고도 하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바닷물에 섞인 염분이 바위를 녹여 좁게 침식된 지형이다.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보존 가치가 크다.

토끼섬에는 또 전 세계에 1만마리 정도만 남아 있는 멸종 위기종 검은머리물떼새와 천연기념물인 황새, 황구렁이, 먹구렁이가 서식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323호이자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급인 매도 매년 5~6월 번식기면 더러 관찰되기도 한다.

토끼섬뿐만 아니라 굴업도 해안은 곳곳이 절경이다. 목기미 해변에는 코끼리바위 같은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동쪽 해안은 염분에 바위가 부식돼 빵 껍질처럼 부풀어 오르고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해안은 마치 거대한 조각 공원 같다.

핵폐기장 유치 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섬은 또 거대기업의 리조트로 전락할 위험에 빠지기도 했었다. 굴업도 섬 전체의 상층부를 잘라내고 골프장까지 만들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다행이 골프장 건설이 취소 됐다.

대기업이 탐하는 이유는 그만큼 굴업도의 자연환경이 아름답다는 반증이다. 굴업도에는 백섬백길 86코스 굴업도 둘레길이 있다. 섬 구석구석을 걷는 빼어난 섬길이다. 굴업도항을 시작으로, 덕물산, 연평산, 코끼리 바위, 큰마을, 개머리 초지까지 10㎞가 이어진다. 부디 굴업도에 가거든 텐트 안에만 있지 말고 이 아름다운 길도 걸어보시라. 굴업도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