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트럼프 변화는 영구적인가, 11월이 답한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아서 반덴버그를 아는 이는 드물어도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춘다”는 그의 격언은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 말은 지켜지지 않는다.
외교는 오히려 국내정치의 연장인 경우가 많다. 양당 간 분열이 깊어지면서 상대 당에 대해 정치적 선호뿐 아니라 기본적 가치관마저 다르다고 여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대통령과 철저히 대립각을 세운다. 백악관에 역대 대통령 사진을 전시한 기념공간을 만들면서도 바이든 대신 오토펜 사진을 걸고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설명문을 붙였다.
바이든이 복귀시킨 파리기후변화협약, 세계보건기구(WHO), 유네스코(UNESCO)에서 트럼프는 다시 탈퇴했다. 나아가 지난 1월 7일에는 66개 국제기구 탈퇴를 명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바이든은 트럼프 1기를 미국 역사의 일탈이라 규정했지만 트럼프는 재선으로 이를 뒤집었다.
세계는 묻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탈이 아니라면 그가 야기한 변화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그린란드 합병 추진, 캐나다의 51번째 주 편입론,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관세,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같은 타국 개입이 다음 행정부에서도 이어질 것인가. 일부 전문가는 변화가 항구적이라 보지만 의견은 갈린다.
중간선거가 트럼프의 운명을 가른다
11월 3일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이 상·하원에서 의석을 늘리면 행정부 견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1월 6일 하원 공화당 의원 모임에서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면 탄핵당할 것”이라며 선거가 자신의 정치적 생존과 직결됨을 인정했다.
11월 선거에서는 하원의원 435명 전원, 상원의원 35명, 주지사 36명을 뽑는다. 트럼프 지지도 하락이 반영돼 최근 공화당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2~8%포인트 낮다. 다만 선거를 좌우하는 것은 투표 시점의 물가 등 경제 상황과 선거구 획정 같은 지역 변수다.
현재 상원 53대 47(공화 대 민주), 하원 218대 213(공석 4석) 구도에서 상원은 공화당이 유지하고 하원은 민주당이 의석을 늘리되 다수당 탈환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게 중론이다.
공화당은 작년 11월 버지니아·뉴저지 주지사 선거와 뉴욕 시장 선거에서 모두 패배해 조기 레임덕 가능성이 거론됐다.
최근 연방 이민당국 요원의 미국 시민 총격 사망 사건이 논란이 되고 역대 최고령 취임 대통령인 트럼프가 각료회의 중 졸거나 손에 피멍이 드는 등 자신이 조롱하던 바이든과 닮은 노쇠 징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악재가 중간선거 전망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극심한 양극화 속에 정치 불신이 팽배한 탓이다.
미국은 올해 건국 250주년을 맞는다.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을 선언한 후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짓는 것과 같이 모범을 세우고자 했다.
미국은 국익을 위해서라도 자유무역, 다자주의, 법의 지배를 수호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작년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고립주의 ‘먼로 독트린’을 계승한 ‘트럼프 귀결’을 천명했다.
미국은 대외관여와 고립주의 사이를 주기적으로 오갔다.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진보와 보수의 30년 주기설을 제시한 바 있다. 다만 트럼프 2기 이후 미국이 ‘돈로주의’를 접고 대외관여로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한번 궤도를 이탈하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어렵다. 각국은 복수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대응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수지, 국방비, 방위비 분담 등 돈 문제만 따지는 탓에 동맹국들이 곤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회의 창이 열리기도 한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미국에 재정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돈로주의’ 시대, 동맹에 기회도 있다
트럼프가 던지는 도전에는 장기적 시각으로 대응하되, 그가 제공하는 기회는 적극 활용해야 한다. 다른 행정부였다면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을 원자력 관련 사안에서 진전을 이뤄둘 필요가 있다.
11월 중간선거 이후 미국 내 정치 지형 변화가 외교정책에 미칠 파장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춘다”는 반덴버그 격언과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는 일은 드물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