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문제는 ‘성장률 추락’이다

2025-12-11 13:00:04 게재

원달러환율 고공행진은 지난 7일 열린 ‘이재명정부 6개월 성과보고 기자간담회’에서 뜨거운 화제였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원화가치 약세에 베팅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이에 대응할 대책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대책’에 방점을 찍은 말이었지만 환율급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가 최고위 정책책임자 입을 통해 재확인됐다. 9월 이후 석 달 새 6%가까이 치솟으며 1500원에 다가선 원달러환율이 향후 더 오를 것이라는데 돈을 건 투자자들이 꽤 많음을 공식화했다.

환율급등에 대한 대증처방은 문제를 더 왜곡시킬 뿐

김 실장은 환율급등의 가장 큰 요인으로 ‘경제주체별 해외투자 활성화’를 꼽았다. 기업들의 대외투자와 함께 기관 및 개인투자자들의 해외 주식투자가 과열되면서 이를 위한 달러수요가 급증한 탓이 크다는 얘기다. 이런 진단과 함께 그가 밝힌 ‘대책’은 △기업의 해외부문 이익을 국내로 환류하고 △개인의 해외투자에 ‘과도한 위험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닌지’ 점검하고 △국민연금의 대외투자 비중을 조절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환율안정을 위해 기업과 개인, 기관의 달러수요(보유)를 줄이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그의 이런 말은 새로울 게 없다.

최근 환율 급등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정부당국은 기업·개인·기관을 주요 원인제공자로 지목하고는 ‘자제’를 경고해 논란을 빚었다. 특히 ‘서학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개인들의 미국 주식투자 규모가 얼마나 된다고 환율 급등의 근본원인을 제쳐놓은 채 우리들을 탓하느냐”는 항의였다. 대놓고 말을 않을 뿐 기업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얼마 전 ‘환율안정 긴급 휴일회의’를 열고는 “기업들이 수출로 번 달러를 쌓아놓으면서 달러예금이 지난달에만 100억달러 가까이 늘어났다”며 “보유 달러를 팔지 않으면 정책자금 지원을 줄이겠다”고 수출기업들을 압박했다.

환율급등에 대한 근본처방 없이 “보유한 달러를 토해내라”고 기업들을 닦달하는 식의 대증(對症)처방은 문제를 더 왜곡시킬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위 정책책임자가 ‘단기대책’을 되풀이해서 앞세운 것은 정부의 상황인식에 대한 우려를 높일 소지가 있다. 아무리 문제가 시급하더라도 단기처방과 함께 중·장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김 실장도 이 점을 놓치지는 않았다. “(환율급등의) 구조적 원인으로 미국 등 해외와 우리나라의 성장률과 금리 격차가 있다”고 말한 대목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 언급만으로 넘어가서는 곤란했다. ‘성장률 격차’가 환율을 치솟게 만든 근본요인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어떤 조치도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없어서다. 성장률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금리격차가 커지는 건 당연하다. 경제규모가 커지는 나라와 제자리걸음(또는 하락)하는 나라의 ‘돈값’에는 틈새가 벌어질 수밖에 없고, 그 차이는 통화의 교환비율 변동으로 반영되게 마련이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환율위기의 근본 원인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적 상황이 앞으로 더 악화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내년 잠재성장률이 1.71%로 올해(1.92%)보다 0.21%p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 호주(2.09%), 스페인(1.94%)은 물론 경제 규모가 13배 가까이 큰 미국(2.03%)에도 내년 잠재성장률이 뒤처질 것이라는 전망은 충격적이다. 이에 따라 2023년 41개 회원국 가운데 16위였던 한국의 잠재성장률 순위가 내년 24위, 2027년에는 25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예상했다.

급격한 원화가치 하락 한국 경제 본격 추락 경고로 받아들여야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 자본 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동원해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뜻한다. OECD는 저출생·고령화로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하고 있는 한국에서 구조개혁이 미뤄지고 있음을 줄기차게 경고해 왔다. 잠재성장률 추락을 예고한 것은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참모회의에서 “내년을 잠재성장률 반등의 원년으로 삼겠다”며 규제 금융 공공 연금 교육 노동 등 6개 분야의 구조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컸다. 원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한국 경제의 본격 추락을 경고하는 마지막 신호로 받아들이고, 분야별 구조개혁을 제대로 해내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이학영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