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
음모론, 비난보다 공감이 먼저
멀쩡하던 가족과 친구가 어느 날부터 부정선거, 비밀 조직, 조작된 진실을 확신에 차서 말하기 시작한다. 정재철 내일신문 기자이자 미디어학 박사가 펴낸 신간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는 이 일상적이면서도 위태로운 장면에서 출발해 음모론이라는 현상을 개인의 비합리성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끌어올린다.
저자는 음모론을 단순한 허위정보나 정보 오류로 규정하지 않는다. 불안, 불평등, 제도에 대한 불신, 정체성의 위기가 얽혀 만들어진 ‘복합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운 존재이고, 음모론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인과관계로 설명해 주는 서사를 제공한다.
책의 문제의식은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를 거치며 더욱 분명해졌다. 유튜브와 극우 커뮤니티에서 떠돌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국가 최고 권력의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음모론은 더 이상 온라인 주변부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등장했다.
저자는 또 음모론을 지능이나 학력의 문제로 보는 통념도 정면으로 반박한다. 고학력자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불안과 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든 음모론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실과 논리로 반박할수록 오히려 믿음이 강화되는 ‘역효과(backfire effect)’가 나타나는 이유를 음모론이 개인 정체성과 자존감에 깊이 결합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의 핵심은 대응 방식에 있다. 저자는 음모론에 빠진 사람과 논리적으로 싸우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대신 5가지 전략을 제시한다. 음모론이 등장할 수 있음을 미리 알리는 사전 예방 전략인 ‘프리벙킹’, 반박 대신 질문을 통해 스스로 신념의 근거를 점검하게 하는 ‘대화 기반 교정’, 핀란드 사례로 대표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알고리즘 추천 구조에 대한 규제와 플랫폼 책임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의 불안과 분노를 인정하는 ‘공감 기반 접근’이다.
30년 가까이 언론 현장을 지켜온 언론인이자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개척자로 불려온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팩트 너머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가정의 식탁에서 시작된 갈등이 사회적 분열과 정치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이 책은 음모론에 맞서는 기준을 ‘편 가르기’가 아닌 ‘공감과 연대’에서 찾는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