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주체적 평화공존’ 의지 살려야 한다

2025-12-24 13:00:01 게재

19일 외교부·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는 여러 의미로 관심이 집중된 자리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보고를 통해 “남북관계를 중심에 두고 한반도 문제 해결을 추진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직전에 있었던 조 현 외교부 장관의 ‘국익중심 실용외교 적극 추진’ 보고에 뒤이어 보고가 진행된 터라 두 부처 사이의 ‘민감한 현안’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어느 쪽에 실려 있느냐, 향후 한반도정책 대북정책에 대한 정부의 통일외교안보전략 무게중심이 어디로 기울 것이냐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한미간 대북정책 공조협의체’ 둘러싼 외교부·통일부 주도권 다툼

‘민감한 현안’이란 외교부가 중심이 돼 한미간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공조협의체를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방안을 말한다. 외교부는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과 케빈 김 주한미대사 대리를 수석대표로 한 정례회의를 추진했다. 통일부는 대북정책은 통일부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며 회의참석을 거부했고, 시민사회단체에선 문재인 대통령 시절인 2018년 가동됐던 ‘한미워킹그룹’의 실패 사례를 들어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미워킹그룹’은 우리와 미국 사이에 대북정책이 엇나가지 않도록 소통하고 조율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으나 갈수록 미국 입김이 강해지면서 주체적인 남북간 교류협력 추진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기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정부의 ‘정면돌파 의지’가 부족했던 탓이 크지만 남북 대화협력 촉진방안 추진에 번번이 제동 걸리며 남북협력은 지지부진 진전되지 못했고 북한의 불신을 사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외교부와 통일부 사이에서 누가 주도권을 갖느냐는 신경전 따위를 넘어선다. 한반도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느 쪽으로 무게를 실어 정책을 추진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 나아가 기본철학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부처 성격상 외교부는 한반도문제를 국제적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핵을 가진 북한에 대처하기 위해 주변 강대국들, 특히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과 조율에 무게를 실어왔다. 반면 통일부는 분단국인 우리로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문제해결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중심성’ 강조다. 미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외교부 중심의 협의체가 되면 결국 또 미국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노무현 대통령 시절 소위 ‘자주파’ ‘동맹파’의 갈등이 재현되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위성락 안보실장 등 외교부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된 현 국가안보실 체제에 대한 통일부의 불만도 저변에 깔려 있다,

통일부는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외교부와 국방부, 그리고 국가정보원에 치여 제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해왔다. 특히 대북강경책으로 치달은 윤석열정권에서는 ‘존재감’이 영(제로)에 가까웠다. 흡수통일을 부르짖던 극우인사를 장관으로 앉히고, 차관조차 외교부 출신으로 채우는 등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불신을 드러낸 상황에서 존재 이유나 정체성까지 의심받는 궁지로 몰리기도 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 대통령은 “각 부처가 고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중재에 나서면서도 남북문제는 통일부의 역할이라고 밝히고, 동시에 국가위기 상황에서는 외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외교부를 추켜세우는 등 갈등을 완화시켰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통일부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인 관점에서 한반도전략 수립과 부처간 업무조율해야

다만 컨트롤타워격인 국가안보실이 외교부쪽에 기운 듯한 지형에서 통일부의 목소리가 실제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이 대통령이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추진하도록 지시해 회의를 주도할 위원장을 누가 맡게 될지도 궁금하다.

임동원 정세현 등 전직 통일부장관 6명은 ‘제2의 한미워킹그룹을 반대합니다’라는 성명을 내는 등 공개 반발했다. 이들 가운데는 통일부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맡아야 미 백악관과 직통 대화통로가 생기게 되고 남북관계에 대한 미국의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으며, 대북정책 전문부처인 통일부의 대북전략이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북한에 전달돼 대화와 협상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년 4월 트럼프의 중국방문이 예정돼 있고, 그 참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간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터라 종합적이고 거시적 관점에서의 한반도전략 수립과 부처간 업무조율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