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 안 된 자연자본, 쌓이는 경제 리스크

2025-12-29 13:00:01 게재

세계는 ‘생태계 계정’ 개발에 속도 … 한국은 2030년 완성 목표, 실제 활용 고민 필요

‘자연은 얼마의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감히 자연을 평가하려고 하나’ ‘자연을 어떻게 정량적으로 평가해’ 등의 반응들이 나온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연을 잘 보전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측정’을 토대로 한 정책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사실 이는 당연한 얘기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51%가 자연에 의존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경제 체제에서는 자연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반영하지 못해온 게 사실이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세계적 경제 석학인 파르타 다스굽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가 쓴 ‘생물다양성의 경제학:다스굽타 리뷰’에 따르면, GDP 성장은 진짜 성장이 아니며 1992~2014년 세계 GDP는 2배 증가했지만 1인당 자연자본은 40% 감소했다. 자연자본을 무한하다고 가정을 한 상태에서 GDP를 생산자본과 인적자본의 합으로 본 체제에서는 인류가 가난해지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다스굽타 교수가 언급한 ‘진짜(포괄적) 부’는 생산자본과 인적자본, 그리고 자연자본을 모두 합산한 것이다.

최근 국제적으로 ‘생태계 계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이러한 관점과 비슷한 맥락이다. 생태계 계정은 △생태계 규모와 상태 변화를 추적하고 △생태계서비스를 측정하며 △자산가치를 평가하는 공간 기반 통합 통계 체계다. 기존 환경 통계와 달리 경제활동과의 연계성을 고려해 환경-경제 통합분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유엔은 2021년 이를 국제 표준으로 채택했으며, 대한민국도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생태계 계정 개발을 추진 중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과제다. 29일 한국환경연구원의 ‘자연자본 가치 주류화를 위한 활용 중심 생태계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전통적인 의미의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는 생태계서비스의 경우 평가 방법론에 따라 가치 산정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또한 생태계 가치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이해관계와 밀접히 연관되므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충분한 소통과 합의는 기본이다. 단순히 일회성 구축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자료 갱신과 방법론 개선 등 사후 관리 역시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주요국들은 활용성을 최우선으로 한 생태계 계정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영국은 2012년부터 자연자본 계정을 개발해왔으며, 2022년 새로운 로드맵을 통해 △거시경제 지표 연계 △정책 및 사업 옵션 평가 △기후변화 대응 등과 연결하는 데 주력한다. 호주는 전략적 감독위원회부터 실무그룹까지 체계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단순히 생태계 현황을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토지이용 계획 △녹색금융 평가 △개발사업 타당성 검토 등 실제 정책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설사 자연자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이라도 제대로 된 측정에 따른 분석의 중요성은 공감할 것이다. 29일 국제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 B’의 논문 ‘해양 보조자원이 대형 육상 육식동물의 생태를 재편하다’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몬테레온 국립공원에서 복원된 퓨마들은 예상치 못한 행동 변화를 보였다. 연구팀은 2019년 9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성체 퓨마 14마리에 위치 확인 시스템(GPS) 목걸이를 장착해 이동 패턴을 추적했다. 동시에 국립공원 전역에 32대의 카메라 트랩을 설치해 개체 수를 파악했다.

퓨마는 단독생활을 한다. 번식기를 제외하면 각자 영역을 지키며 홀로 사냥한다. 하지만 연구팀이 추적한 결과, 마젤란펭귄을 사냥하는 퓨마들은 동종 개체와의 접촉 빈도가 5배나 높았다. 특히 펭귄 서식지 반경 1km 내에서 전체 접촉의 63%가 발생했으며, 이 중 71%는 암컷 퓨마끼리 마주친 경우였다. 일반적으로 암컷 퓨마는 새끼와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 영역을 방어하는데, 이곳에서는 영역성이 크게 완화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지역 퓨마 밀도는 100㎢당 13.2마리로, 전 세계에서 기록된 퓨마 밀도 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만약 정밀한 측정 없이 ‘퓨마가 복원됐다’는 사실만 확인했다면, 이런 극적인 행동 변화는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변화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생태계 복원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퓨마가 사라진 뒤 확장된 펭귄 서식지, 그리고 보호구역 지정으로 돌아온 퓨마. 변화된 환경에서 형성된 새로운 포식-피식 관계는 두 종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인간 역시 자연의 한 요소인 만큼 큰 틀에서는 이 영향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한국환경연구원의 ‘자연자본 가치 주류화를 위한 활용 중심 생태계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생태계 계정의 궁극적 목적은 정책 규제 계획 개발 등 사회경제적 의사결정에 생태적 측면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때문에 주요 경제 지표와 연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활용이 어려울 수 있다.

이는 곧 측정되지 않은 리스크가 경제 전반에 누적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 세계 GDP의 51%가 자연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자연자본 훼손은 기업 수익성과 금융 안정성에 직접적 위협이 될 수 있다. 다행히 국제금융시장은 이미 대응에 나섰다. 국제 이니셔티브인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에서는 자연 손실이 기업 재무에 미치는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권장한다. 한국 기업들도 유럽연합(EU) 공급망 실사 규정과 환경·사회·투명경영(ESG) 투자 기준 등으로 자연자본 데이터 제출을 요구받지만, 국가 차원의 표준화된 측정 체계는 미흡하다. 대한민국이 2030년까지 마련하기로 한 생태계 계정이 실제 활용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환경통계가 아닌 경제 리스크 관리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TNFD =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는 기업과 금융기관이 자연 및 생물다양성 관련 리스크와 기회를 평가하고 공개하도록 하는 국제 민간 이니셔티브다. 2021년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환경계획 금융 이니셔티브(UNEP FI) △세계자연기금(WWF) 등이 공동으로 출범시켰다. 기업의 자연자본 의존도와 영향을 측정·공개하는 표준화된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2023년 9월 최종 권고안을 발표했다. 기업들이 자연 손실로 인한 재무 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자연 친화적 경영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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