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야심작 ‘강북전성시대’ 삐걱

2025-12-29 13:00:03 게재

서울 내 주택공급 부지 선정 차일피일

용산 정비창 주택공급 규모 정부 이견

오세훈 서울시장 야심작인 ‘강북전성시대’가 정부와 이견으로 주춤하고 있다.

29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정부의 주택공급대책 발표는 당초 연내에서 내년으로 미뤄졌다. 정부 발표 지연의 핵심은 서울 내 주택공급 부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와 협의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추가공급 부지 마련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규제 폭풍을 몰고온 10.15 대책 발표 이후 후속 부동산 대책은 정부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규제’로 상징되는 정부 정책에 맞서 공급 물량 확보로 차별화하려는 서울시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10.15 대책 후과가 초기보다 잠잠해지는 상황인 만큼 공급대책 지연으로 인한 타격은 정부보다 서울시가 더 크게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내 주택공급 규모를 두고도 이견이 계속되고 있다. 시는 용산 정비창 일대를 국제업무지구로 바꾸는 대규모 도시 개조를 추진 중이다. 서울시는 해당 지구 안에 주택 공급 규모가 8000가구를 넘으면 안된다는 입장인 반면 국토부는 1만 가구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언뜻 큰 간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상당한 차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서울시장 4선 임기를 6개월여 앞둔 오 시장의 히든카드로 불린다. 사업계획상 이견 때문에 국제업무지구 사업 자체가 지연될 경우 이 또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시 안팎의 예측이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주택 공급 방안 등을 논의한 뒤 함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는 공급 물량을 과도하게 늘릴 경우 학교와 도로, 공공시설 등 기반시설 계획 전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사업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26일 서울시장 누리집에 공개한 영상에서 “당초 6000가구를 기준으로 계획을 설계했지만 정부 요청으로 8000가구까지 확대한 것”이라며 “주택을 과도하게 넣으면 전체 계획을 다시 짜야 하고 이는 빠른 주택 공급이라는 정책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북횡단선 막히자 지하고속도로 추진 = 오 시장의 강북대개조 프로젝트 가운데 정부와 이견으로 삐걱대는 분야는 주택정책만이 아니다. 강북횡단선은 지하철 접근성이 열악한 강북지역 교통여건을 해소할 주요 인프라로 평가됐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평가를 번번이 통과하지 못하면서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내부순환로와 북부간선도로를 철거하고 도로를 지하화해 강북지하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대형 교통 인프라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꽉 막힌 강북 교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시 안팎에선 예타에 발목 잡힌 강북횡단선의 대안으로 강북을 횡으로 관통하는 지하고속도로 안이 만들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정부-서울시 갈등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전형적 주도권 다툼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를 정치권의 진영 갈등으로만 해석하는 건 좁은 시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례로 강북횡단선 예타에서 미끄러진 건 윤석열정부 때부터다. 그린벨트 해제 등 서울 내 주택공급 부지를 둘러싼 정부-서울시 갈등은 문재인정부 시절에도 지속됐으며 당시 서울시장은 박원순 전 시장이었다.

이 때문에 시민 삶을 좌우할 시급한 정책 결정이 오히려 정쟁을 핑계로 미뤄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 서울시 관계자는 “정쟁도 문제지만 진영 갈등 뒤에 숨어 서로 책임을 미루다가 중요 사업이 시기를 놓치는 일이 허다하다”며 “시민 삶과 깊이 관계된 주택, 교통같은 문제들은 관료들에게 일임하거나 정쟁 탓을 하며 방치해선 안되며 수장들이 나서 큰 차원의 결단과 협력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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