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 출범…기재부 1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재경부는 경제정책 조율 … 기획처엔 예산·기획 기능
재경부에 국고실·혁신성장실·조세추계과 등 조직신설
기획처, ‘기획-예산-집행-평가-환류’ 체계 구축 구상
기획재정부가 재정경제부(재경부)와 기획예산처(기획처)로 분리됐다. 경제정책과 예산을 함께 틀어쥐었던 ‘슈퍼부처’ 체제가 막을 내렸다. 이명박정부 때인 2008년 2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통합해 기재부가 출범한 지 18년 만에 다시 정책 조정기능과 예산 권한이 분리된다.
정부는 이번 분리를 통해 경제정책은 보다 기동력 있게 조정하고, 재정과 예산은 중장기 국가 전략에 맞춰 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동안 기재부는 △거시경제 정책 수립 △재정 운용 △예산 편성 △중장기 국가 전략 등 사실상 정부의 핵심 경제 기능을 전담했다. 이 때문에 권한 집중과 정책 견제 기능 약화 등이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재경부는 경제정책 조율 = 2일 정부에 따르면 이날 기재부는 재경부와 기획처로 공식 분리 출범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오전 세종시 재정경제부 청사에서 현판식을 갖고 출범을 알렸다.
재경부는 경제 전반을 조율하는 ‘경제정책 컨트롤타워’로, 기획처는 재정 운용과 국가 비전을 설계하는 ‘미래 전략 부처’로 각각 자리매김한다. 예산과 정책 기능을 한 부처에 집중시켰던 ‘한 지붕 두 가족’ 구조를 해체하고, 기능별 전문화를 선택했다.
재경부는 2차관·6실장 체제로 출범한다. 예산과 중장기정책개발 기능을 떼내고도 현행 기재부체제(1급 대변인 별도)와 엇비슷하다. 조직 확대를 통해 시장·민생·산업·통상을 아우르는 조정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1급 조직은 차관보, 국제경제관리관, 혁신성장실, 세제실, 국고실, 기획조정실, 대변인 등 7개다. 신설 조직은 혁신성장실과 국고실이다.
국고국은 국고실로 격상돼 국채 관리뿐 아니라 국유재산과 조달 정책까지 포괄한다. 재정 집행과 성장 전략을 보다 긴밀히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차관보실 산하에는 물가·고용 등 민생 현안을 전담하는 민생경제국이 새로 들어선다.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경기·민생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복잡해진 부동산 정책·세제 이슈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부동산정책팀을 부동산시장과로 격상시켰다. 반복된 세수 추계 논란에 대응해 세수 전망을 전담하는 ‘조세추계과’도 신설된다.
특히 재경부에는 경제공급망기획관이 새로 설치된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통상·경제안보 이슈에 대응해 범부처 정책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조달 관련 국장급 자리도 신설됐다. 기재부와 조달청 등으로 분산돼있던 기능을 한 곳으로 모아 운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재경부 장관은 경제부총리를 겸임하며, 향후 경제정책 조정 역할에 보다 더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과 국가발전계획 기능 포괄 = 이날 함께 출범한 기획처도 이날 오전 부처 현판식을 갖고 신설부처 출범을 알렸다. 현판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임기근 기획처 차관, 실국장 등이 참석했다. 기획처는 정부직제상 국무총리실 아래에 편성됐다.
기획처는 1차관·3실장 체제로 출범한다. 예산실과 기획조정실에, 기존 미래국을 확대 개편한 미래전략기획실이 신설된다. 예산편성 기능에 더해 △성장 전략 △인구구조 변화 대응 △재정 지속 가능성 등을 아우르는 중장기 국가 전략 전담 조직을 두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기획처는 예산 집행 이후 성과를 다시 기획과 예산에 반영하는 ‘환류 기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연 단위 예산 편성과 집행에 그치지 않고, 사업 성과 평가 결과를 다음 해 예산 편성과 중장기 재정 계획에 다시 연결하는 구조를 제도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기획처에는 재정성과국이 설치된다. 주요 재정 사업의 성과를 점검한 뒤 효과가 낮은 사업은 구조조정하거나 폐지하고, 성과가 검증된 사업은 유지·확대하는 역할을 맡는다. 예산을 집행한 뒤 결과가 다시 정책 기획과 예산 배분에 반영되는 ‘기획–예산–집행–평가–환류’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기능뿐 아니라 공간도 분리된다. 재경부는 기존 기재부가 사용하던 사무실에 머문다. 반면 기획처는 해양수산부가 사용하던 정부세종청사 5동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출범 초기엔 기존 사무실과 임대 건물 등을 활용한다. 이전 마무리는 오는 3월 이후가 될 전망이다.
한 건물 안에서 이뤄지던 예산·경제 정책 수립이 공간적으로도 분리되면서 두 부처의 독립성과 역할 구분도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획과 예산편성 연동 = 특히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이 이재명정부 초대 기획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 향후 기획처를 중심으로 기획·예산 기능을 연계한 재정운영 체계가 본격 가동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획처가 단순한 예산편성 기관을 넘어 중장기 국가전략과 재정운용을 함께 설계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이 후보자는 지난해 12월29일 임시 집무실로 출근하면서 “단기적 대응을 넘어 더 멀리, 더 길게 보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기획예산처가 태어난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그때그때 예산을 배정하는 게 아니라 미래 안목을 갖고 기획과 예산을 연동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아울러 이 후보자가 그동안 보수적인 재정운용 기조를 강조해왔다는 점도 향후 기획처 운영 방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회 활동 과정에서 재정 건전성과 지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언급해왔다. 무분별한 재정 확대에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에 따라 기획처는 단기 경기 대응을 위한 재정 확대보다는 지출구조를 점검해 재원을 확보한 뒤 민생과 성장 분야에 선별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거론된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면서 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역할이 기획처의 핵심 과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