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베네수엘라 충격’ 속 한중 정상회담

2026-01-08 13:00:08 게재

미국이 대규모 공습과 함께 베네수엘라 수도를 침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압송한 후 미국 법정에 세운 충격적 소식으로 새해 벽두부터 국제사회가 뒤숭숭하다.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내세워왔던 미국이 국제법 위반, 주권국가 침탈이란 비판 따위는 아랑곳 않겠다는 듯 압도적 군사력으로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것은 약육강식·각자도생의 정글처럼 냉혹한 국제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이 겉으로는 마약테러 단죄를 내세웠지만 세계 1위 석유매장량을 탐낸 것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단순한 일회성 군사작전을 넘어 뒷마당격인 북남미를 철저히 통제하고 관리하겠다는 뜻이란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트럼프는 안보상 이유를 들어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욕심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제법 무시한 강대국 무력행사, 우리로선 강 건너 불 아냐

강대국들이 무소불위 힘자랑을 하기 시작하면 ‘나쁜 선례’로 굳어져 약소국들은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라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나아가 중국이 대만을 겨냥해 ‘힘에 의한 변경’을 추구할 때 무슨 논리로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국제법이 철저히 무시되는 이러한 상황전개는 우리로선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핵보유를 내세워 미국과 팽팽한 신경전을 펴는 북한과 접경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른다.

또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이에 따른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주한미군 주둔 등으로 구조적 제약을 받고 있는데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로 대만해협에서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때 우리 뜻과 상관없이 휘말려들 위험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는 당장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나, 자신의 의지대로 외교안보정책을 펼칠 실질적 힘이 없으면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번지며 이재명 대통령의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의 9년만의 중국 국빈방문은 오랜 기간 후퇴했던 한중관계의 전면 복원과 함께 안보적 위협을 상당부분 분산케 할 것이란 기대감을 낳는다. 한미, 한일 관계를 먼저 다져놓고 중국에 적극적 외교로 과감하게 다가간다는 전략이다.

우리측 기대도 크지만 중국이 이 대통령을 새해 첫 국빈으로 초청하고,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 이어 서열 2, 3위에 해당하는 리창 총리와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회의 위원장과의 만남, 차기 지도자로 꼽히는 천지닝 상하이시 당서기와 만찬을 하도록 배려하는 등 최고 예우로 환대한 것은 나름 계산된 행동일 터이다. 높아진 우리의 위상, 그리고 한중관계를 전면 복원해 새로운 한중관계 발전 틀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 대통령 뜻이 전달돼 공감을 얻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극우적 언행에 불만과 불안을 느끼는 중국으로선 한국을 끌어들여 지정학적 위험요소를 감소시킬 필요성이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미-일-한 군사협력의 하위구조로 의심받던 한국이 정권교체 후 ‘국익중심 실용외교’를 추구하면서 트럼프의 거센 관세압박에도 굳건히 버티는 등 스스로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개척해나가겠다는 진정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 실질적 협력을 모색할 기본토대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북한과의 대화 모색에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요청한 이 대통령에게 호의적 반응을 보인 것도 한반도평화와 동북아 평화유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9년만의 국빈방문에 최고 예우로 환대한 중국, 양국 관계복원 틀 닦아

북한은 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첫날이자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직후 동해상으로 극초음속미사일을 발사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략적 공격수단들의 상시 동원성과 그 치명성을 적수들에게 부단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인식시켜야 한다”며 “이것이 왜 필요한지는 최근의 지정학적 위기와 다단한 국제적 사변들이 설명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핵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그리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과시한 것이다.

북한의 한층 높아진 대 미국 경계심이 트럼프의 4월 방중에 맞춰 추진될 것으로 기대됐던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다소 낮출 것으로 분석돼 유감스럽다. 그러나 시간을 갖고 남북화해·협력의 물꼬를 트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외교안보는 국가생존이 달린 문제다. 세계 흐름을 냉정하게 파악하면서 잠시도 방심하지 말고 창의적으로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