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휴양공원, 자연보전과 이용 갈등 새 돌파구 되나
미국은 국립휴양지 제도로 자연·사회·경제자원 균형 활용 … 통합물관리 이점 살리는 지역 주도형 맞춤 제도 고민
“자연을 보전하면서 어우러져 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산 뿐만 아니라 강이나 호수 등 여러 지역에서 국민들이 보전과 이용의 조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할 때다.”
조우 한국생태학회장(상지대 조경산림학과 교수)은 8일 “미국의 경우 내셔널 파크 서비스(NPS)를 근간으로 다양한 유형의 국립공원을 운영 중”이라며 “우리나라와 같은 국립공원은 물론 △자연자원 보전과 공공의 여가 활용을 동시에 추구하는 국립휴양지 △미국 백악관 등이 지정된 역사적 의미를 강조한 ‘내셔널 히스토릭 사이트’ △내셔널 모멘츠 △내셔널 배틀필드 등 다채롭다”고 말했다.
미국의 국립휴양지 제도는 20세기 중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여가공간 부족 △수자원 개발 확대 △국민 생활 수준 향상에 따른 야외활동 수요 증가 등으로 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구가 도시권으로 집중되고 대규모 댐 건설과 수력발전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생겨난 인공 호수와 수자원 지역은 새로운 여가 공간으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엄격하게 자연을 보전해 규제가 강한 국립공원 형태로 운영하면 국민들이 여가를 즐기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자원 보전과 공공 여가 활용을 동시에 추구하는 국립휴양지라는 제도를 발전시켰다. 1936년 미국 후버댐 완공 이후 형성된 미드호 국립휴양지가 이러한 사례다.
◆기후부, 6월 자연공원법 개정 추진 = 우리나라도 최근 이와 관련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재명정부는 123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4대강 자연성 및 한반도 생물다양성 회복’을 내세웠다. 2030년까지 보호지역 30%를 달성하고 국제 수준의 생태계·생물다양성 보전정책을 추진하는 게 목표다. 또한 △국립공원 지역 명소화를 위한 테마시설 확충 △국가 휴양공원 등 지역 특화 관광자원 개발 △민간 참여 생태계보전 활동에 대한 지원 근거 마련 등을 담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국립휴양공원을 만들기 위해 6월 안으로 자연공원법 개정을 추진한다. 레저·휴양을 위해 행위제한은 완화하되 생물다양성은 보전·증진되도록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11일 배준호 한라대학교 교수(관광학박사)는 “국립휴양공원 제도는 생태관광을 단순히 ‘자연을 보고 오는 관광’에서 벗어나 머물고 참여하는 체류형 생태관광으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며 “생태보전과 △휴양 △교육 △지역 경제 활성화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 자연공원 모델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간을 어떻게 나누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생태관광 기반이 마련된다”며 “보전·완충·활용 등 3단계 구역 체계를 통해 핵심 생태지역은 엄격히 보호하되 주변 완충·활용 구역에서는 생태체험이나 교육·휴양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의 운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 학회장은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은데 강이나 홍수를 중심으로 한 공원은 없는 상황”이라며 “수질과 수량을 함께 관리하는 통합물관리가 운영 중인만큼 규제가 강한 국립공원 형태가 아닌 새로운 유형의 자연보전지역을 설정해 자연공존지역(OECM)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2022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가 채택됐다. 2030년까지 지구 육지와 바다의 최소 30%를 보호지역 및 OECM으로 보호하는 ‘30×30’ 목표를 달성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OECM은 보호지역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생물다양성이 효과적으로 보전되는 지역을 의미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OECM으로 인정받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장기 지속성 △생물다양성 보전 효과 입증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을 제시했다.
12일 해외 학술지 ‘npj Biodiversity’의 논평 ‘OECM에 대한 흔한 오해와 전 지구적 보전 목표에 대한 함의’에 따르면, OECM의 잘못된 적용이 30×30 목표 달성을 왜곡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논평의 저자 중 한 명인 제임스 핏지몬스 박사는 IUCN OECM 가이드라인 작성에 참여했다.
논평에서는 “이미 효과적으로 보전되는 기존 지역을 발굴해 OECM으로 인정하는 것이 원래 취지였다”며 “하지만 각국 정부가 숫자 채우기에 급급해 자연보전 효과가 불분명한 지역까지 포함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합 관리 모델로 합리적 운영 방안 마련 = 미국의 국립휴양지는 약 40곳이다. △텍사스의 아미스타드 △조지아의 재터후치 강 △워싱턴의 첼란 호수 △콜로다도의 큐레칸티 등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과 함께 △야생동물 관찰 △카누 △카약 △노젓기(패들링) △등산 등 다양한 레저 활동이 이뤄진다.
미국 국립휴양지는 자연보전 지역 중에서도 도시 접근성이 높고 다목적 이용이 가능한 이른바 ‘완충형 보호지역’으로서 기능한다는 게 특징이다. △수질 보전 △생태계 복원 △문화유산 보호를 하면서도 공공의 참여와 교육, 지역 경제 활성화까지 포괄하는 통합 관리 모델로 거듭났다. 단순한 여가공간이 아니라 자연·사회·경제적 자원의 균형적 활용을 지향하는 연방 차원의 종합 관리 제도로 자리매김했다는 평을 받는다.
배 교수는 “미국의 국립휴양지는 도시 접근성이 좋고 다목적 이용이 가능한 보호지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실제 운영을 보면 특정 레저 활동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된다는 한계도 분명 있다”며 “국내에서 국립휴양공원을 운영한다면 단순히 레저 종목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프로그램 구성 자체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 △치유 △웰니스 △생태탐방 △지역문화 체험 등을 모듈형으로 결합해 이용자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식으로 여러 활동을 엮어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며 “미국 사례가 비교적 표준화된 프로그램 운영에 가까웠다면 우리나라는 지역 주도형 콘텐츠 개발에 중점을 둬 여가 공간을 넘어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적 기반 시설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립휴양공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9일 정인철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국장은 “무조건 반대를 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를 만들겠다는 건지 시민들에게 정확하게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며 “이후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이뤄져야만 제도가 튼실하게 설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기존의 정책을 잘 다지기보다는 특정 아이템을 브랜드화하려는 분위기가 있다”며 “기존 제도를 활용해 보전과 이용이라는 균형을 잘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 학회장은 “미국의 사례를 바로 우리나라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며 “해당 지역에 사유지가 있을 수도 있고 하천에서의 행위 제한 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설 설치 등 제도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 맞는 국립휴양공원 도입을 위한 연구가 심도 있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