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개념의 탄생과 디지털 부족주의

2026-01-12 13:00:03 게재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휴대용 컴퓨터까지 지향점은 ‘공존’ … 근본적 질문으로 돌아갈 때

시장이냐 박물관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무조건 시장이다. 그럼에도 박물관을 따라나선 까닭은 인생 대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서였다. 평생을 책에 헌신한 어느 출판사 대표, 일생을 사진에 건 어느 예술가, 오랜 시간 정부 기관에 몸담은 어느 출판인, 은행원의 삶을 은퇴한 어느 독서가까지. 네 선배들의 나이를 합치면 족히 300살은 될 것이다.

이러한 대선배들과 필자의 공통점은 ‘책’을 사랑하고 ‘예술’을 흠모한다는 점이다. 5인의 목적지는 인천 송도였다. 2023년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는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제목으로 ‘세상을 바꾼 위대한 출판인, 알도 마누치오(Aldo Manuzio)’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인천 송도의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는 알도 마누치오 특별전(왼쪽)이 열리고 있다. 그를 상징하는 문양은 ‘닻을 감은 돌고래’고 그를 대표하는 문장은 “천천히 서둘러라”다. 박물관 지하에는 세계 최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휴대용 컴퓨터 오스본 1(오른쪽)도 전시하고 있었다. 사진 김욱진

‘활자적 인간’ 탄생시킨 마누치오

출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 ‘마누치오’다. 오늘날 인쇄혁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구텐베르크의 기계적 성취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현대적 ‘독자’ 개념을 설계한 인물은 베네치아의 인문주의자 마누치오였다.

구텐베르크가 지식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공장을 세웠다면 마누치오는 지식을 개인의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옥타보(Octavo), 즉 8절 판형으로 압축해 ‘휴대용 도서’를 만들었다. 쇠사슬에 묶여 대성당의 독서대를 지키던 거대한 책들은 마누치오의 손을 거치면서 개인의 은밀한 동반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활자적 인간(Typographic Man)’으로 변모했다.

활자적 인간은 캐나다 출신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이 정의한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주인공이다. 마누치오가 제공한 사(私)적이고 선형적인 독서 환경은 인간의 감각 중 시각을 비정상적으로 키웠다. 이는 곧 타인과의 분리, 냉철한 거리두기, 선형적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서구 근대 합리주의의 토대가 된다. 수세기가 흐르고 1962년, 매클루언은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한다. 그는 이를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 명명했다.

지금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 달리 매클루언의 지구촌은 단순히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는 네트워크가 아니다. 매클루언에게 지구촌은 활자시대에 파편화된 인간의 오감을 다시 통합하고 잃어버린 부족적 유대감을 회복하는 ‘감각의 르네상스’를 의미한다.

매클루언의 저서 '구텐베르크 은하계'에 따르면 인쇄술은 인간을 시각적 고립상태로 몰아넣었다. 마누치오의 휴대용 도서 덕분에 가능해진 ‘묵독’은 공동체로부터 개인을 분리했다. 인간이 문자라는 추상적 기호에 집중하면서 청각 촉각 후각과 같은 감각은 쇠퇴했다. 매클루언은 이를 “감각의 비율이 깨진 상태”로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근대인은 세계를 분석하고 분류하는 데 능숙해졌지만 세상과 온몸으로 공명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1960년대 매클루언이 목격한 라디오와 텔레비전 같은 전자 미디어는 퇴화된 감각을 되살리는 도구였다. 그는 전기·전자가 중추신경계의 확장 매개로 작용해 인쇄술이 쌓은 시각적 장벽을 허물고 인간을 다시 총체적 경험의 장으로 초대한다고 믿었다.

매클루언에게 지구촌은 다시 말소리가 들리고, 감정이 즉각 공유되며, 인간이 서로의 고통과 기쁨에 온몸으로 관여하는 ‘재부족화(Re-tribalization)’의 공간이다. 그는 이 부족주의적 회귀를 문명화라는 미명 아래 소외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우리가 현재 마주한 디지털 공간의 혐오와 갈등 때문에 매클루언의 ‘지구촌’ 개념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을 테다. 하지만 1960년대 매클루언이 예상한 지구촌은 유토피아적 ‘공존’에 가깝다. 그가 말한 부족주의는 배타적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문자가 분절한 머리와 가슴을 다시 연결하는 통합적 존재 방식을 뜻한다.

일례로 지구촌에서 인간은 타자의 불행을 선형적 신문기사로만 읽지 않는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굶주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이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본다. 아이가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강렬한 정서적 공감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청각 시각 촉각이 모두 개입한다.

매클루언은 이러한 전지구적 ‘상호의존성’이 인류를 하나의 유기체로 묶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시각에만 의존하는 분절적 개인을 탈피해 오감을 모두 사용하는 통합된 인류로 거듭나게 된다는 의미다.

현재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분절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매클루언의 지구촌 철학을 컴퓨터로 구현한 인물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휴대용 컴퓨터 ‘오스본(Osborne) 1’을 설계한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리 펠젠스타인(Lee Felsenstein)이다.

1970년대 후반, 컴퓨팅 기술은 거대 기업과 정부가 독점하는 중앙 집중적 권력이었다. 이는 매클루언이 우려한 통제적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이 컸다. 펠젠스타인은 지식이 소수에게 독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누치오가 포켓용 책을 개인에게 전파했듯이 컴퓨터 역시 개인이 휴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1981년 펠젠스타인이 내놓은 오스본 1은 ‘해방의 하드웨어’다. 펠젠스타인은 이 휴대용 컴퓨터를 ‘공생의 도구(Convivial Tool)’라 불렀다. 그에게 사용자는 단순히 정보를 소비하는 객체가 아니다. 오스본 1은 사용자가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며 지구촌의 능동적 일원이 되도록 돕는 도구였다.

오스본 1의 휴대성은 마누치오의 옥타보처럼 ‘메인프레임’ 공간에서 지식을 끄집어내 거리 카페 마을 광장으로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 매클루언의 지구촌 개념에서도 펠젠스타인의 휴대용 컴퓨터는 개인의 방어막인 동시에 공동체 참여 창구로 작용한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디지털 환경은 매클루언이 꿈꾼 ‘오감의 지구촌’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지만 통합되어 있지 못하다. 우리는 참여하고 있지만 공감에는 서투르다. 소셜 미디어는 매클루언이 말한 참여를 ‘중독적 반응’으로 치환해 버렸다. 오감을 통한 전인적 교류 대신 알고리즘이 선별한 정보만을 받아들이며 파편화된 부족주의에 빠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매클루언이 꿈꾼 신부족주의는 타인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공존하는 ‘마을의 지혜’였으나 지금 나타난 디지털 부족주의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배척하는 ‘가상 공간의 혐오’에 가깝다. 펠젠스타인이 오스본 1을 통해 구현하려 애쓴 ‘자율적 개인의 연대’는 거대 플랫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종속적 연결’로 변질되었다.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은 우리는 마누치오의 사적 자율성도, 매클루언의 통합적 감각도, 펠젠스타인의 해방적 도구도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천천히 서둘러라’에 보완책 있어

마누치오의 문장인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가 우리의 지구촌을 보완할 열쇠가 될는지도 모른다. 한국어로는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뜻인 이 경구를 마누치오의 상징 문양인 ‘닻을 감은 돌고래’와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다. 역동적 돌고래가 ‘서두름’에 해당된다면 방향을 잡는 닻은 ‘신중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초연결 시대의 빠른 속도를 추구하되 인간의 깊은 성찰과 사적 자율성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매클루언이 예견한 ‘지구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그 방향은 시각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다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또한 펠젠스타인이 오스본 1을 통해 꿈꾼 테크놀로지는 인간을 억압하는 수단이 아니라 ‘공생’의 도구였다. 마누치오의 휴대용 책이 개인의 내면을 열었다면 펠젠스타인의 휴대용 컴퓨터는 개인의 가능성을 해방된 세계로 이끌었다.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현재 어쩌면 우리가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기술은 인간의 감각을 통합하고 있는가 더 잘게 쪼개고 있는가. 우리는 지구촌 이웃과 공명하고 있는가, 가면을 쓰고 혐오를 표출하고 있는가. 매클루언이 말한 ‘오감으로 소통하는 인류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는 디지털 도구를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부터 부단하게 연습해야 할 것이다. 1962년 매클루언이 우리에게 던진 ‘지구촌’에 대한 화두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김욱진 ‘AI와 실리콘밸리의 반문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