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성장과 도약에는 ‘여지’가 필요하다

2026-01-13 13:00:02 게재

“탈(脫)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했던 김성환 기후에너지부 장관의 ‘방향 선회’가 화제다. 김 장관은 지난 7일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에만 의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공개 인정했다. 원자력발전을 완전히 중단하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면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과 관련, “우리나라는 동서 길이가 짧아 햇빛 비추는 시간이 매우 짧다. 최근에서야 그 문제를 느꼈다”고도 했다.

에너지정책 주무부처 장관의 이런 인식 전환은 이재명정부가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AI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대량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AI를 작동시키려면 구글 등 기존 검색사이트보다 최대 10배 이상 많은 전력이 소요된다. 비용 효율성이 높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원전을 더는 외면할 수 없음을 공식화한 배경일 것이다.

탈 원전에서 ‘방향선회’한 김성환 기후에너지부 장관의 현실 인식

김 장관의 이날 발언 중에 또 하나 주목받은 게 있다. “우리나라가 원전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문재인정부 당시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해외에는 원전을 수출했는데, 국내에서는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겠다고 하면서 수출을 병행한 점은 한편으로는 궁색하게 보이기도 했다”고 말한 대목이다. 같은 정당의 전임 정권을 ‘저격’한 셈이어서다.

그의 말마따나 문재인정부 시절 해외수출은 계속하면서도 강력하게 밀어붙인 ‘국내 탈 원전’ 정책은 궁색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산업 도약에 큰 족쇄를 채웠다. 완고한 탈원전 조치가 부른 전력원가 급등으로 인해 산업용 전기요금이 급속하게 치솟았고, 제조업체들의 생산성과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치명타가 됐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문재인정부의 에너지부처 초대 수장이었던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취임 초기 “무슨 일에서든 여지를 두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사실이다. 월성1호기를 조기 폐쇄하는 등 탈원전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검찰수사까지 받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교조적 탈원전주의자는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가 생각을 바꿔 현장사령관으로 탈원전의 ‘총대’를 멘 데는 당시 정권 전반의 경직된 분위기가 작용했을 것이다. 올해를 ‘경제 대도약의 원년’으로 선포한 이재명정부가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성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많이 강조하는 정치지도자다. 야당 대표시절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이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한다”며 이념을 초월한 실용정치를 표방했고, 작년 6월 대통령에 취임해서는 ‘경제수석비서관’ 명칭을 ‘경제성장수석비서관’으로 바꾸면서까지 성장 최우선 정책 의지를 다짐했다. 올해 신년사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장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의지를 실천으로 구체화해 최종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정책 시행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문재인정부가 환경원리주의에 빠져 막무가내로 탈원전을 고집했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김성환 장관의 인식 전환이 반가운 이유다.

정책 시행의 유연성과 ‘실용’의 유연함 발휘돼야

그런 점에서 그와 이재명정부가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할 게 있다. 최근 속도를 내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정책이다. 정부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53~61% 감축한다는 계획을 확정, 얼마 전 브라질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공식화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함께 하겠다”고 했다. 맞는 말이지만, 중요한 건 목표의 실현가능성과 추진속도다.

경제현장에서는 화력발전 비중이 높고 철강, 석유화학 등 탄소 배출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들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정부는 기후변화협약에서 아예 탈퇴해버렸고, 중국과 인도 등 대규모 탄소배출 국가들도 협약 참여에 미온적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탈탄소’를 선도했던 유럽연합(EU)의 ‘후퇴’다. 2035년부터 시행키로 했던 내연차 판매 전면금지 조치를 지난달 사실상 철회했다. 과도한 목표 설정의 무모함을 깨달은 결과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의욕만을 앞세웠다가 경제 전반을 그르치는 일이 또 일어나선 안된다. ‘실용’의 유연함이 제대로 발휘돼야 한다.

이학영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