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 합병했더니 감사보수·시간 증가

2026-01-13 13:00:04 게재

안진·한영 사례 분석 … “법적 책임에 맞게 감사시간 증가”

당국, 대형화 유도 … 업계 “AI 도입, 조직 확대 부담 커져”

회계법인들이 합병을 통해 규모가 커지면 합병 전과 비교해 감사보수와 감사시간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상장회사에 대한 외부감사를 금융위원회에 사전 등록된 회계법인으로 제한하는 ‘감사인 등록제’를 시행하는 등 대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긍정적인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회계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 도입 등으로 감사 업무와 관련된 수요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조직 확대를 경계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8일 한국회계학회가 발간한 회계학연구 ‘2025년 12월호’에 실린 논문 ‘대형 회계법인의 합병과 감사시간 및 감사보수의 변화’는 안진회계법인과 한영회계법인 사례를 분석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작년 10월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열린 회계법인 CEO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동해 기자

안진회계법인은 2005년 하나회계법인과 합병해 통합 안진회계법인으로, 같은해 영화회계법인과 안건회계법인이 합병해 통합 한영회계법인이 탄생했다.

이번 연구는 두 회계법인의 합병 전 3년과 합병 후 3년간 감사보수와 감사시간의 변화를 합병을 하지 않은 다른 회계법인과 비교해 분석했다.

실증분석에 사용된 표본(4672개)의 평균 감사보수는 8053만원, 평균 감사시간은 975시간으로, 표본 중 23.9%가 합병 대상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았다.

분석결과 합병 회계법인의 감사시간은 약 31.1% 증가했고 비합병 회계법인은 약 18.1% 증가했다. 합병 회계법인의 감사시간이 약 13%p 더 늘어난 것이다. 감사보수는 합병 이후 약 25.6% 증가했고 비합병 회계법인은 약 2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합병 회계법인의 감사보수가 약 4~5%p 증가한 것이다.

논문을 작성한 최종학 서울대 교수와 선우혜정 국민대 교수는 “여러 요인들을 통제한 다변량 분석에서도 합병 회계법인의 감사보수와 감사시간이 기타 회계법인보다 더 유의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합병이 감사 투입시간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표본을 대형 회계법인으로 국한해 비교한 추가적인 결과와 합병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2004년과 2005년 표본을 제외한 분석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최 교수와 선우 교수는 “합병을 통해 규모가 커진 회계법인들이 비례적으로 증대한 법적 책임에 걸맞게 감사시간을 늘리면서 감사보수도 상승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이번 연구의 발견은 감사인의 대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규제기관에게 정책의 효과와 관련한 여러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다만 ‘시간당 감사보수’에 대한 분석에서는 합병 회계법인과 그렇지 않은 회계법인 간에 유의적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상장회사 감사인 등록제를 실시한 2020년 이후 매년 등록회계법인에 대한 품질관리 감리를 실시하고 있다. 품질관리 감리는 외부감사법에 명시된 품질관리기준에 따라 감사인이 품질관리시스템을 적절히 설계·운영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을 말한다.

회계법인들은 품질관리기준에 맞게 자금·인사 등 경영전반의 관리체계를 통합관리하는 소위 ‘원펌(One-firm)’ 체제의 구축·운영해야 하는데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규모가 작은 회계법인들은 이 같은 기준을 충족하기 쉽지 않다.

감사인 등록제는 금융당국이 등록회계법인들의 대형화 추진을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실제로 2024년 진일과 세일원 회계법인이 합병해 태일회계법인이 탄생했고, 지난해 성현과 보현회계법인이 합병해 통합 성현회계법인이 출범하기도 했다. 또 회계업계의 매출이 점차 줄어들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중견·중소회계법인들 사이에 합병 논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라 업무 자동화가 회계법인 감사분야에 빠른 속도로 확대·적용되면서 합병 분위기는 위축되고 있다.

합병을 검토했던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AI 도입으로 조직을 확대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업무 자동화로 회계사 수요가 크게 줄어드는 등 앞으로 시장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조직을 늘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경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