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39 자월도 국사봉길

붉은 달의 섬에서 백사장을 걷는다

2026-01-16 13:00:03 게재

붉은 달의 섬, 자월도(인천 옹진군)의 관문 달바위 선착장 인근 열녀 바위에는 조형물이 하나 있다. 조형물은 열녀의 전설에서 비롯됐다.

옛날 한 어부가 이 섬에서 어로를 하고 살았다. 어느 해 겨울, 어로를 나간 어부는 사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어부의 아내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워 남편을 찾아 헤매다 달바위 포구까지 왔다.

그곳에서 놀랍고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엄청나게 큰 지네가 사람을 물어 죽인 뒤 촉수를 꽂고 즙을 빨아먹고 있지 않은가.

아내가 순간적으로 기절했다가 깨어나 보니 남편이었다. 그녀는 기막힌 슬픔에 몸을 가눌 길이 없었다. 통곡을 하던 어부의 아내는 마침내 달 바위에서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일설에는 어부를 죽인 것이 큰 뱀이라고도 전해진다. 오늘의 우리는 진실을 알 길이 없다. 섬에는 유독 지네나 독사가 많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섬에서 지네나 뱀에 물려 희생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어부의 전설은 전설이 아니라 현실이었을 것이다. 뱀이나 지네 독에 감염돼 죽었을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어로를 나갔다 조난당한 어부의 시신이 떠밀려 왔을 것이다. 어부의 시신에 수도 없이 많은 지네들이 달라붙어 그 즙을 빨아대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지네의 모습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아내는 끔찍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어부의 죽음도 안타깝고 아내의 죽음 또한 애절하다.

옛 시절에는 남편의 뒤를 따라 아내가 죽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하지만 안타까움과 애절함이 반생명적인 관습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열녀를 칭송하는 것은 순장을 미화하는 것과 같다. 열녀를 권하는 사회는 사악하다. 열녀의 신화는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로 보던 봉건 사회의 악습이다. 열녀 바위 조형물이 어부를 따라 죽은 아내의 정절을 칭송하고 열녀를 미화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자월도 장골 해변은 1㎞, 폭 400m, 고운 모래밭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해변에서 굴을 캐고 조개 낙지 게 등을 잡는다. 섬의 텃밭처럼 소중한 해변이다.

자월도 장골해변은 고운 모래밭이다. 마을사람들은 해변에서 굴을 캐고 조개 낙지 게 등을 잡는다. 사진 섬연구소 제공

장골해변 오른편의 바위섬은 독바위인데 썰물 때면 건너갈 수 있다. 장골이란 지명은 관리들이 세금으로 싣고 오던 곡식을 빼돌려 팔던 장터(場)가 있었던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해적들이 세곡선을 습격해 약탈해온 쌀을 매매하던 곳에서 유래 됐다고도 한다.

인천에서 32㎞ 해상에 위치한 자월도는 주변 4개의 유인도와 9개의 무인도를 아우르는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의 중심 섬이다. 면적이 7.06㎢이니 여의도 보다 조금 작다. 해안선 둘레는 20,4㎞, 동서 길이 6㎞의 길다란 섬이다. 고려가 망하면서 공민왕의 후손들이 숨어 들어와 살았다는 전설도 있다.

자월도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소홀도(召忽島)’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붉은 달의 섬, 자월(紫月)이라는 지명은 숙종 37년 1711년 ‘비변사등록’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조선시대 남양부 소속이었던 자월도는 남양부 호방(재무 담당 관리)이 세금을 걷으러 다녔다. 세금을 걷어 돌아가려 했으나 여러 날 풍랑 때문에 돌아가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에 달을 보니 검붉은 달이 희미하게 보여 자월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육지에서 온 관리의 속이 검붉게 타들어 갔던 것일까.

자월도에는 백섬백길 90코스 국사봉길이 있다. 9.9㎞의 국사봉길은 국사봉의 완만한 능선길과 큰말, 장골 해변 백사장을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