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지도자의 사과는 굴복 아닌 용기다
한반도의 평화로운 일상은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의 도구로 쓰였다는 윤석열 내란수괴의 ‘일반이적죄’ 혐의는 우리 안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의도적인 긴장고조를 통한 정치적 이익 획득은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이다. 안보의 사적 이용은 국가를 사적 소유물로 보는 것이다.
작금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전쟁의 참상은 슬픔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한다.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오래된 도시들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하고,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과 평범한 시민들이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통곡하고 있다. 보복과 증오의 악순환 속에 승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의 비극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며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잠깐 총성이 멈춘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군사적 긴장이 높은 곳 중 하나다. 최고지도자의 진정한 사과와 화해는 얼어붙은 관계를 녹이는 가장 강력한 마중물을 이끈다. 1970년 12월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었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의 ‘말 없는 사죄, 침묵의 웅변’은 수십년 간 쌓인 유럽의 원한을 씻어내는 초석이 되었다. 독일은 무릎을 꿇음으로써 유럽의 진정한 리더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분단 이후 북측 몇 차례 직·간접적인 사과
1995년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역시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식민지배의 가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는 피해 국가들과의 협력의 폭을 넓히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다. 지도자의 언행에는 무게가 있다. 그 무게가 성찰과 화해를 향할 때 비로소 갈등의 실타래가 풀린다.
분단 이후 북측은 남측인 우리에게 몇 차례 직·간접적인 사과를 했다.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북측의 반응은 신속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통지문을 통해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 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해왔다. 북측 최고지도자가 직접 ‘미안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민간인의 일탈에 의한 북측지역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북측 김여정 부장은 곧장 긍정적인 화답의 담화를 발표했다. 특히 국가수반인 김정은 위원장은 대북 유감 표명을 “솔직하고 대범한 사람의 자세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했다. 김여정 부장의 담화를 매개로 남북한 최고지도자의 간접적인 의사소통으로 평가된다.
이재명정부는 윤석열정권의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해서도 국민과 북측 앞에 진솔하게 고개를 숙일 필요가 있다. 지도자의 사과는 상대방에게 건네는 가장 정중한 대화 요청이기도 하다. “남측은 더 이상 북측 체제를 무너뜨리거나 위협할 의사가 없으며, 서로의 안전을 해치지 않겠다”는 확고한 천명이 필요하다. 이는 북측 당국자에게 전하는 가장 강력한 ‘상호존중’의 보증수표다. 지도자의 사과는 굴복이 아닌 용기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전염병은 남과 북을 가리지 않는다. 접경지역의 홍수는 양측 마을을 동시에 덮치고, 산불은 경계 없이 번진다. 가축의 병 역시 철책을 넘어 확산된다. 이러한 위기 앞에 남과 북은 하나의 ‘생명공동체’다. 정치가 막혔다고 생명을 구하는 일까지 멈춰서는 안된다.
비정치적인 영역에서부터 협력을 재개해야 한다. 전염병 방역이나 재난대응 시스템을 함께 구축하는 것은 서로의 생존을 돕는 인도적 행위이자 신뢰를 쌓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다. 남북 양측이 이마를 맞대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때, 갈등의 화약고는 사라지고 생명력을 지키는 안전한 땅으로 거듭날 것이다.
비정치적인 영역에서부터 협력 재개해야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넘어 우리가 누려야 할 ‘기회’이자 ‘권리’다. 번영은 총칼이 아니라 평화로운 대화 위에서 꽃을 피운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증오를 물려주어서는 안된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미워하는 대신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지혜를 실천해야 한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한반도는 전쟁의 공포가 사라진 ‘희망의 땅’이어야 한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주먹이 아닌 대화임을 기성세대가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의 무거운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