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채용·인공지능에 치인 청년들 “차라리 쉬겠다”
대기업 신입 채용 축소 여파에 진입 차단 심화 … 청년 고용 감소, 20개월째 이어져
청년 고용지표는 겉으로 보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기 공채 축소와 경력 중심 채용 확산, 인공지능(AI)과 자동화 도입이 맞물리면서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할 수 있는 ‘출발선’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실업 대신 ‘쉬었음’으로 밀려난 청년들이 늘고 있는 배경이다. 청년 고용위기를 단기 경기 부진이 아닌, 노동시장 진입 구조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짚고 첫 일자리가 사라진 이후 개인과 사회가 치르고 있는 비용을 분석해 왔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2030세대 쉬었음 인구는 71만7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70만명을 돌파했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하나인 쉬었음은 특별한 사유 없이 구직활동도 하지 않아 노동시장 밖에 있는 인구다.
청년 고용위기가 단순한 경기 둔화를 넘어 노동시장 진입 구조의 문제로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의 경력·수시채용 확산으로 신입 채용 통로가 좁아진 가운데, 청년 고용은 1년 반 넘게 뒷걸음질치고 있다. 그 결과 구직을 포기하거나 대기 상태로 머무는 ‘쉬었음’ 청년이 늘면서 최근에는 스스로를 ‘전업자녀’라고 부르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16일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1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11만2000명 감소했고 청년 고용률도 0.4%p 하락했다. 연말 채용 성수기에도 반등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청년 고용감소는 2024년 4월 이후 20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노동시장에 막 진입하는 20~24세 고용률 하락폭이 커, 첫 진입단계에서의 위축이 구조적으로 누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경기 요인에 따른 조정이라면 통상 6~9개월 내 반등 신호가 나타난다”며 “1년 반을 넘긴 감소는 채용구조 변화의 결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청년 실업률은 급등하지 않고 있다. 이는 청년들이 실업자로 남기보다 노동시장 참여 자체를 멈추고 비경제활동 상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른바 ‘청년 고용의 역설’로 실업률만으로는 노동시장 입구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포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간 지표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2025년 전체 취업자 수는 전년보다 19만3000명 늘었지만 증가 폭은 2년 연속 10만명대에 그쳤다. 고용률 상승분은 주로 60대 이상과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에 집중됐고, 청년층 취업자는 연간 기준으로 17만8000명 감소했다.
‘쉬었음’ 청년 역시 42만8000명으로 늘어나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서의 이탈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30대의 쉬었음 인구도 30만9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회적 비용으로 작용 = 문제는 이 ‘쉬었음’이 개인의 선택이나 일시적 휴식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비용으로 누적된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이미숙 창원대 교수에게 의뢰해 분석한 ‘쉬었음 청년의 경제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2019~2023년)간 ‘쉬었음’ 청년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총 44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평균으로는 약 9조6000억원 규모다.
보고서는 ‘쉬었음’ 청년이 취업했을 경우 얻을 수 있었던 잠재소득과 사회보장부담금을 합산해 비용을 산정했다. 분석 결과 ‘쉬었음’ 청년의 예상 월소득은 약 180만원으로 취업 청년 평균 임금(217만원)의 82.7% 수준에 달했다. 단순 저소득층 문제가 아니라 상당한 생산성을 가진 인적자원이 노동시장 밖에 머물며 손실을 키우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고학력 청년 비중의 증가다. 같은 기간 전체 청년 인구는 966만명에서 879만명으로 감소했지만 ‘쉬었음’ 청년은 36만명에서 40만1000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이 가운데 대학 졸업 이상 고학력 청년은 2019년 13만3000명에서 2023년 15만3000명으로 15.8% 증가했다. 전체 ‘쉬었음’ 청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6.8%에서 38.3%로 1.5%p 상승했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고학력 청년일수록 경기 상황과 시장 여건에 따라 노동시장 진입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그 배경에 채용구조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정기 공채가 사라지고 수시·경력직 채용이 일반화되면서 신입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통로 자체가 급격히 좁아졌다는 것이다. 신입 채용에서도 ‘경력 우대’가 사실상 필수 조건처럼 작동하며 청년들은 “경력이 없어 탈락하고 탈락해서 경력을 쌓지 못하는” 악순환에 놓이고 있다.
◆선택 아닌 구조적 이탈 = 이 같은 구조적 이탈의 배경에는 채용방식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채용 플랫폼 캐치에 따르면 2025년 1~11월 대기업 정규직 신입 채용공고는 2145건으로 1년 전보다 43% 감소했다. 인턴·계약직을 포함한 전체 신입 채용공고도 34% 줄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도 신규 채용 계획이 있다고 답한 기업은 60.8%에 그쳤고 채용 확대 계획을 밝힌 곳은 13%에 불과했다. 정기 공채가 줄고 즉시 투입 가능한 경력직 위주로 채용이 재편되면서 청년들의 첫 일자리 진입 문턱은 구조적으로 높아졌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에는 신입이 단순 업무부터 맡으며 배우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그런 업무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거나 시스템으로 대체됐다”며 “현장에서는 바로 투입 가능한 인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그 결과 신입 채용 자체가 줄어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통계 당국도 이런 변화를 인정하고 있다. 빈현준 국가데이터처 사회통계국장은 “수시·경력직 채용이 늘어나면서 과거 실업으로 잡혔던 인구가 ‘쉬었음’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용문화 변화로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단계에서 탈락한 인구가 실업 통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확산은 채용구조 변화를 더욱 가속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2020년대 들어 AI와 자동화 도입이 빠르게 진행된 산업일수록 반복적·보조적 업무 비중이 뚜렷하게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 과거에는 신입이나 초년 노동자가 맡으며 숙련을 쌓던 역할이 AI로 대체되면서 기업 내부에서 ‘신입이 처음 맡을 일’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AI는 일자리를 한번에 없애기보다 경력이 없는 인력을 노동시장 입구에서 먼저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신입을 채용해 교육·훈련을 거치게 하기보다 이미 숙련된 인력을 선호하는 유인이 커지고 이는 경력 채용 기조 강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중소기업은 인력난, 이중구조 고착화 = 이 변화는 ‘첫 일자리’의 무게를 더욱 키운다. 과거에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시작해도 경력을 쌓아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하는 경로가 일정 부분 작동했다. 그러나 지금은 첫 진입에 실패하면 곧바로 경력 공백이 생기고 공백이 길어질수록 다음 채용에서 불리해지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의 선택은 중소기업 취업보다 ‘대기’로 이동한다. 중소기업 기피는 단순한 눈높이 문제가 아니라, 첫 일자리에서 임금과 경력 모두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다면 선택을 미루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월평균 임금 격차가 200만원을 훌쩍 넘는 현실도 이런 인식을 강화한다.
반면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청년 구인난이 구조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미충원 인원 비율은 대기업의 두배 안팎에 달한다.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청년이 선택하지 않는 일자리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청년 취업난과 중소기업 구인난이 동시에 심화되는 ‘이중구조’가 고착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사람이 필요한 건 맞지만 청년 입장에서는 첫 직장으로 선택했을 때 이후 경력에 도움이 될지 불안해하는 분위기가 크다”며 “지원자가 없는 이유를 단순히 눈높이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동시장 진입이 막히자 청년들의 생활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전업자녀’ ‘전업자녀 브이로그’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영상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직업 없이 부모와 함께 살며 집안일을 맡고 그 대가로 생활비를 받는 모습이다.
반복된 탈락과 장기 대기로 인한 심리적 소진, 경력직 중심 채용 관행, 스펙 인플레이션이 맞물리며 비자발적 ‘쉬었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청년 고용문제를 구조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인턴·체험형 일자리와 직업훈련 확대 등 대응이 이어지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완충 역할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단기 일 경험이 민간 채용에서 충분히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출발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청년 고용문제를 ‘국가적 위기’로 규정하며 구조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K자형 성장의 그늘이 청년 세대에 집중되고 있고, 노동시장 진입의 출발선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청년 고용문제를 단기 경기 대응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전반의 문제로 다루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해법 역시 구조 전환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핵심은 첫 경력의 사회적 보장이다.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 공식 경력으로 인정되는 첫 일자리 경로를 제도화하고 기업이 신입 채용을 유지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발선 회복을 위한 선택이 늦어질수록 그 부담은 다음 세대와 사회 전체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나온다.
청년 고용위기는 이제 실업률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경력 중심으로 재편된 노동시장에서 진입이 막히자 청년들은 ‘쉬었음’과 ‘전업자녀’라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 노동시장 입구가 열리지 않는 한 청년의 대기시간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으로 계속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