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통합, 정치이벤트 아닌 구조전환 기회
절차 프레임 벗어나 정책 경쟁으로
통합 이후를 가르는 건 특례 설계
대전·충남 광주·전남 등 광역단위 행정통합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역 통합 논의처럼 보이지만, 그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이 놓여 있다. 문제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다. 권역별 메가시티를 통해 수도권 1극 구조를 넘겠다는 국가 전략은 제시됐지만 이를 실제로 집행할 행정·재정 단위는 여전히 분절돼 있다.
행정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개편이나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권한과 재정, 정책 결정권을 어떤 단위에서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지, 중앙집중 구조를 지역 단위에서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에 대한 시험대에 가깝다. 이에 내일신문은 대전·충남과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를 통해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이 실행 단계에서 마주한 제도적 쟁점을 짚어본다. <편집자주>편집자주>
최근 행정통합 논의는 주민투표와 추진 시기, 선거 일정과의 연계 여부 등 절차를 둘러싼 공방으로 기울어 있다. 논의가 가열될수록 통합이 성사될 경우 무엇이 달라지는지, 지역 주민이 실제로 체감할 변화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뒤로 밀리는 양상이다. 통합 논의가 다시 정치적·절차적 갈등에 머물 경우, 어렵게 열린 기회 자체가 소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동현 전북대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 국정 구상 속에서 대전·충남과 광주·전남은 행정통합을 새로운 ‘기회의 창’으로 재구성하려는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다”며 “지금은 통합의 명분을 놓고 다툴 때가 아니라, 통합 이후 지역이 맡을 역할과 그에 따른 실질적 보상을 구체화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절차 공방에 가려진 본질 = 통합 논의가 절차 문제에 집중되는 배경에는 주민 동의와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중요한 쟁점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절차 논쟁이 통합의 전부가 될 경우 오히려 논의 자체가 공회전할 가능성을 경계한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행정통합 논의가 절차와 속도 문제로만 소비되면 통합을 통해 무엇을 바꾸겠다는 정책적 선택은 사라진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찬반을 가르는 프레임이 아니라, 통합 이후를 놓고 경쟁하는 정책 프레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절차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며 “주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통합 이후의 구체적 변화상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법 비교가 중요한 이유 =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공개된 광주·전남 통합 특별법 초안과 과거 대전·충남, 대구·경북 통합 논의 당시 법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세 법안은 모두 ‘통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 담고 있는 권한 이양 방식과 특례의 범위, 재정 설계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대전·충남 통합 특별법안은 교통·산업·농지·에너지·복지 등 생활과 산업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권한 이양을 전제로 하고 있다. 광주·전남 통합안 역시 국가산단, 문화·관광, 에너지 분야 특례를 전면에 내세우며 초광역 단위 정책 설계를 시도하고 있다. 반면 과거 대구·경북 통합 논의는 행정체계 개편에 비해 실질적 권한 이양과 재정 구조 개편이 제한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합 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반복됐던 배경이다. 권선필 교수는 “특별법을 비교해 보면 통합의 성패는 절차가 아니라 특례의 깊이와 묶음 이전 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며 “어떤 법안이 중앙 권한을 실제로 내려놓고 있는 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기회의 창’ 지금 아니면 어렵다 = 하동현 교수는 지금의 통합 논의를 ‘일회성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구조 전환의 기회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대통령과 여야, 지방정부가 동시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상황은 흔치 않다”며 “이런 상황이 만들어낸 기회의 창은 오래 열려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권선필 교수 역시 “정책의 창은 열릴 때보다 닫힐 때가 더 빠르다”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이후 통합 논의는 성장 전략이 아니라 위기관리 차원의 구조조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정부도 16일 통합 지방정부에 부여할 인센티브 방안을 발표했다. 중앙정부가 통합 이후 구조 설계에 대한 밑그림을 내놓은 만큼 통합 지방정부의 역할과 보상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통합 논의가 ‘절차를 지켰는가’라는 질문에서 한발 더 나아가 ‘통합 이후 어떤 정책 선택이 가능해지는가’를 놓고 공개적인 비교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광주·전남 행정통합 추진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강위원 전남도 경제부지사는 “행정통합 특별법에는 국가가 지방소멸 대응과 지역 대부흥에 나섰다는 정치적·제도적 선언이 담겨야 한다”며 “특별법 논의가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경쟁력을 위한 국가 전략의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