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2026 김구의 해’와 탐욕 판치는 세계

2026-01-21 13:00:01 게재

세계는 지금 약육강식 ‘야만의 시대’로 돌아간 듯 힘이 강한 자들의 노골적 탐욕과 혐오가 판치고 있다. 인류 보편적 가치로 여겨지던 평화와 사랑 문화 도덕 연대는 실종되고 약소국가들은 생존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빚어진 전쟁이 수년째 지속되는 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제법과 국민주권을 짓밟으며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납치·압송해 미 법정에 세우고, 오랜 동맹국이었던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내놓으라고 노골적으로 협박하고 있다. 미 국내에서도 공권력을 앞세운 연방정부의 폭력적 행태가 갈수록 거칠어지며 인권침해 사태에 대한 반대시위가 계속 번져간다.

유네스코, 올해를 군사력·경제력 아닌 ‘문화’와 ‘평화’ 강조한 김구 기념해로 지정

이렇듯 인류 역사가 ‘문명’에서 ‘야만’으로 퇴보하는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이 지구촌을 감도는 가운데 유네스코(UNESCO)가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인 2026년을 기념해로 공식지정한 것은 각별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유네스코 총회는 군사력·경제력이 아닌 ‘문화의 힘’을 통해 세계평화를 추구한 백범의 비전이 유네스코의 보편적 가치와 부합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백범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대표적인 항일 독립투사로 온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으나, 해방 이후에 민족의 나아갈 길로 부국강병이 아닌 인류 전체에 행복을 주는 ‘문화국가’를 제시한 혜안을 지닌 지도자였음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었다.

그는 저서 백범일지에 실린 ‘나의 소원’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다음과 같이 ‘문화’의 가치를 강조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백범은 수십년 항일투쟁을 하면서 일본경찰의 체포 위협과 억압으로 평생 피신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극복해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처럼 ‘문화’를 특히 강조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해방된 뒤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고 남북간 평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충정으로 정치생명을 걸고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회담을 하기도 했다.

이런 백범의 간절한 소망이 통한 것일까. 지금 한국은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몰라보게 높아져 있다. 외교·안보적으로 주체적 결정을 할 수 없는 종속변수로서의 약소국 지위를 벗어나 선진국 대열을 뒤쫓는, 최소한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는 없는 ‘독립변수’로 발돋움 중인 것만은 사실이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산업과 막강한 방산무기 제조국가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6위권 군사강국으로 평가받는다.

그중에서도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 등 이른바 K-컬쳐, 문화방면에서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어찌 보면 민족적 중흥기를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자기중심적 평가도 나온다.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의 문화적 품격을 확실히 높여 ‘문화강국’의 위상을 확고히 다져야 한다.

내란 시도에 평화적이되 분연히 맞선 국민저항 정신 전세계가 인정

이런 비약적 진전은 그동안 꾸준히 축적해온 힘이 바탕이 됐지만 최근 윤석열정부의 내란 시도에 온 국민이 맨몸으로 맞서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경이로운 저항’이 국제적으로 감동을 주고 인정받은 측면이 크다.

이번 유네스코 기념해 지정 과정만 보더라도 우리 외에 카메룬 중국 코트디부아르 말라위 나미비아 태국 베트남 잠비아 등 아시아·아프리카 8개국이 공동지지국으로 참여했는데. 이런 폭넓은 지지가 윤석열정권 하에서라면 가능했겠는가. 우리가 유네스코에 공식 신청한 시기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틀 뒤인 2024년 12월 5일로 사전정지작업은 그 전부터 ‘조용히’ 추진됐다. 뉴라이트 계열 극우인사들이 역사적 중요 직책을 독점하고 ‘이승만건국대통령 띄우기’가 활개 치던 시절이라 물밑에서 조용히 추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대통령 탄핵에 이은 정권교체가 없었다면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전세계가 인류 공동의 염원인 평화와 문화, 인권존중 흐름에서 크게 탈선하는 암담한 모습을 보이는 때이기에 유네스코의 ‘2026년 백범 김구의 해’ 지정은 더욱 의미가 깊고 빛을 발한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