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연체채권 매입·소각한다더니…대부업체 보유 3조원 넘게 남아
13개 업체 매각 합의했지만 4.9조 중 1조~2조에 그쳐
매입가율 낮아 반발 … “매각 인센티브, 효과없는 대책”
정부가 장기연체채권을 매입해 소각 등 채무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부업체들이 팔지 않고 보유한 대상 채권 규모가 3조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매입가율(채권 장부가액 대비 실제 매입 가격 비율)이 낮아 대부업체들이 매각에 협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업계는 헐값 매각에 따른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협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새도약기금 관련 대부업체 동향 점검회의를 열고 “상위 30개 대부업체(대상채권 보유규모 기준) 중 13개 업체가 새도약기금 협약에 가입했으며 현재 약 10개 대부업체와 가입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장기연체채권을 매입해 소각·채무조정해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의 빚을 탕감해주기로 했다. 전체 대상 채권은 16조4000억원으로 이중 대부업권이 보유한 규모는 약 4조9000억원이다. 비중이 약 30%에 달할 정도로 높다.
하지만 23일 금융당국과 대부업계에 따르면 채권 매각을 위해 새도약기금 협약에 가입한 13개 대부업체에서 정부가 매입하는 대상 채권 규모는 약 1조~2조원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17개 업체는 일괄매각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새도약기금 협약에 가입한 대부업체들은 대부분 연체 기간이 10~20년이 넘어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낮은 매입가율에도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매입가율을 5%로 제시하고 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최근 약 2000억원의 채권을 팔기로 한 A대부업체의 경우 보유한 연체채권 대부분 20년이 넘은 것이라서 회수가 어렵기 때문에 판 것”이라며 “최근 몇 년 사이에 은행 등에서 사온 연체채권은 매입가율이 평균 20%가 넘는데 5%에 팔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채권 매입 추심업의 매입가율은 2022년말 19.5%, 2023년말 24.4%, 2024년말 29.9%, 지난해 6월말 33.4%로 계속 상승하고 있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매입가율 5%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대상을 7년 이상 장기연체채권이라고 밝혔는데, 대부업체가 매입한 시점은 그보다 짧다. 은행에서 연체가 발생하고 3개월이 지나면 신용정보회사(추심업체)에 위탁을 하고 6개월 이상이 지나면 매각을 검토한다. 대부업체에 넘기는데 1년 이상 또는 2~3년이 걸리기도 한다.
자금조달 능력이 부족한 대부업체들은 인수한 연체채권을 담보로 캐피탈이나 저축은행에서 다시 대출을 받는 구조로 사업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요구대로 매입가율 5%에 연체채권을 넘기면 손실이 확정돼 대출상환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연체채권 일괄매입 추진이 대부업체 자금 구조에 연쇄적인 부실을 촉발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은 채권 매각에 합의한 대부업체들에게 2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먼저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 협약을 개정해 새도약기금 협약에 가입한 대부업체에는 개인연체채권을 매각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2020년부터 금융회사들이 개인 무담보 연체채권을 대부업체 매각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발생한 개인연체채권의 과잉추심을 방지하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대신 개인채무자의 재기지원을 위한 목적으로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를 운영해왔다. 금융회사들이 개인연체채권을 캠코가 운영하는 해당 펀드에만 매각할 수 있도록 창구를 단일화했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제한 조치를 새도약기금 협약에 가입한 대부업체에 한해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또 새도약기금 참여 우수 대부업체에 대해서는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은행권 차입 기회를 열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대부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제시한 2가지 유인책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있다. 대부업체에 개인연체채권 매각을 막은 조치는 코로나19로 인한 것인데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도 조치를 연장하면서 마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처럼 생색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우수 대부업체의 은행권 차입 허용은 지난 2021년 서민금융 우수 대부업 제도(대부업 프리미어리그) 도입으로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은행들이 대출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대부업체들은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취약계층 대출의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은행들은 ‘대부업체에 돈줄 역할을 한다’는 평판 리스크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우수 대부업체 지원 제도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데 또 협약에 가입한 우수 대부업체에 대해 은행 차입 기회를 열어주겠다는 것은 효과 없는 대책을 재탕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내달 매입채권추심업체의 불법추심 등 민생침해적 영업행위에 대한 현장 점검에 착수해 위규행위 발견시 엄중 제재하고 영업행위 개선을 지도하기로 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