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통합, 100년 된 행정구역 개혁 시험대

2026-01-26 13:00:17 게재

입법·사법은 바뀌는데 행정은 그대로

누적된 비합리성, 통합논의로 수면 위

우리나라 행정구역 체계에 누적돼 온 비합리성이 시·도 행정통합 논의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입법·사법 영역과 달리 행정구역만 100년 넘게 구조적 조정 없이 유지돼 왔다는 학술적 진단이 제기되면서 최근 정부 지원을 계기로 본격화된 행정통합 논의가 개별 지역의 통합 여부를 넘어 한국 행정구역 체계 전반을 재검토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힘을 얻고 있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26일 한국행정학회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균형성장을 위한 지방행정통합의 과제’ 토론회에서 “현행 광역·기초 행정구역 체계는 합리성·효율성·민주성·적응성 측면에서 구조적 한계가 가장 많이 누적된 제도”라고 진단했다. 같은 국가 안에서 입법과 사법 영역은 끊임없이 조정돼 왔지만, 행정구역만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고착돼 있다는 지적이다.

◆행정구역 1914년 틀에서 못 벗어나 = 권 교수는 정부 영역별 구역 관리 방식을 비교하며 행정구역의 경직성도 지적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인구 편차 2대 1 기준이 적용돼 총선마다 조정된다. 사법부의 법원 관할구역 역시 사건 수와 업무량을 기준으로 재편이 반복돼 왔다. 고등법원 관할은 이미 초광역 단위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행정구역은 1914년 일제강점기 설정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인구 변화나 기능 조정에 따른 체계적 개편 기준이 없고 조정이 필요할 경우 주민투표와 법률 개정이라는 높은 정치적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로 인해 행정구역만 사실상 ‘조정이 작동하지 않는 제도’로 남아 있다는 평가다.

행정구역의 비합리성은 극단적인 인구 편차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말 기준 경기 수원시 인구는 118만여명으로, 경북 울릉군(8696명)의 136배에 이른다. 선거구 인구 편차 3대 1도 위헌 판단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행정구역의 이런 격차는 주민 1인당 행정 대표성과 서비스 형평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권 교수는 “같은 세금을 내는 주민이 행정구역에 따라 전혀 다른 행정 역량과 서비스를 제공받는 구조가 고착돼 있다”며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도 충돌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생활권은 초광역, 행정은 분절 = 정책 집행 단위와 행정구역의 괴리도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은 이미 생활권·경제권 기준으로 권역을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국세청·고용노동청·한국전력·건강보험공단 등 주요 공공서비스는 광역 단위로 묶여 집행되지만, 자치행정만은 시·군·구 경계에 갇힌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동일 생활권 안에서도 정책 기획과 집행 주체가 갈라지고 광역적 조정이 필요한 사안일수록 협의 비용과 행정 지연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 교수는 “실제 행정과 서비스 공급은 이미 초광역 단위로 작동하고 있는데 자치행정의 법적 경계만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행정구역이 정책 실행의 발목을 잡는 구조가 누적돼 왔다”고 말했다. 생활권과 경제권은 초광역화됐지만 행정구역만 100년 전 틀에 묶여 있다는 평가다.

◆행정통합 논의, 구조 전환의 분기점 =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권 교수는 대전·충남 등 광역 행정통합을 ‘결정적 분기점’으로 규정했다. 특정 지역의 통합 여부를 넘어 100년 가까이 유지돼 온 행정구역 경로를 바꿀 수 있는 제도 실험이라는 의미다.

지방소멸과 인구 불균형, 초광역 정책 수요가 동시에 커지는 상황에서 기존 행정구역 체계의 한계가 분명해졌고 정부 차원의 재정·제도 인센티브와 특별법 논의가 맞물리면서 구조 전환의 조건이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권 교수는 “행정통합이 성공하면 새로운 행정구역 표준이 만들어질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현 체계가 다시 수십 년 고착될 가능성도 있다”며 “이번 논의는 특정 지역의 유불리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 한국 행정구역 개혁이 가능한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라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김신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