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송의 미국 톺아보기

그린란드 논란이 아시아와 한국에 던진 질문

2026-01-27 13:00:02 게재

#1. 2019년 8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사는 것이 전략적으로 타당하다”라고 말했다. 이미 미군은 1951년 협정에 따라 북부 툴레(Thule) 공군기지(현 피투피크우주기지)를 운용 중이었다. 7년이 지난 2026년 1월, 트럼프는 다보스포럼 연설을 통해 “미국만이 그린란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라며 린란드 통제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2.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직후 덴마크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은 “그린란드는 매물도 판매대상도 아니다. 터무니없는 발상”이라고 단호히 반박했다.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그린란드는 매매의 대상이 아니다(Greenland is not for sale)”라는 팻말을 들었다. 그러자 트럼프는 예정되어 있던 덴마크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해버렸다.

#3. 2026년 재점화된 논란 속에서 트럼프는 “무력은 쓰지 않겠다”라면서도, 요구를 거부하면 “우리는 그것을 기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압박을 ‘강압’으로 규정하며 보복관세와 법적대응 가능성을 검토했다. 군사문제로 시작된 발언이 내부 정치와 통상계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세 장면이 공통으로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이미 군사적 접근이 보장된 지역에서 ‘소유’와 ‘통제’라는 정치적 언어가 재등장하는 이유, 그리고 그 언어가 외부 적대국이 아닌 동맹국을 향해 사용되는 이유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군사적 실익과 정치적 신호는 분리되어 분석될 필요가 있다. 이 논란의 본질은 그린란드라는 특정 지역이 아니라 안보협력과 주권 사이의 한계를 정하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또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트럼프의 발언이 만들어낸 파장이다. 동맹은 외부위협에 맞서기 위해 존재하지만, 동맹 내부에서 주권이 침해되기 시작하면 내부규범은 흔들린다. 유럽의 시각에서 볼 때 해당 발언은 단지 특정 동맹국 간의 갈등을 유발한 것이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체제의 기본 전제를 되짚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그린란드 논란은 특정 지역의 외교분쟁으로 출발했지만 동맹과 강대국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시험하는 사례가 된 것이다.

동맹과 강대국 정치 시험하는 사례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둘러싸고 ‘소유’라는 언어를 다시 꺼내 든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군사적 현실부터 분리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1951년 미-덴마크 방위협정을 통해 그린란드 전역에 대한 군사 접근권과 기지 운영, 시설 확장 권한을 이미 확보해 왔다. 북극 방어의 핵심 거점인 피투피크 우주기지는 미사일 조기경보와 우주 감시 임무를 수행하며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체계와도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 러시아와 북미를 잇는 최단 경로를 감시하는 이 인프라는 군사적 관점에서 이미 충분한 효용을 제공한다.

하지만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는 ‘편입’이나 ‘통제’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이유를 군사적 필요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복스(Vox)뉴스와 시사잡지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은 미국이 이미 그린란드에서 핵심 군사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트럼프의 발언을 정치적 메시지로 규정한다.

이러한 시각은 유럽 외교 현장에서의 반응과도 맞닿아 있다. 로이터(Reuters)와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덴마크와 유럽연합 관계자들은 이 사안을 안보협력의 틀보다 동맹의 규칙과 주권의 경계를 재정의하게 만드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그린란드 논란을 둘러싼 문제의식은 미국과 덴마크 사이의 양자 갈등에 있지 않다. 핵심은 동맹 내부에서 지켜져 온 암묵적 규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NATO는 외부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체제이지, 동맹국의 영토나 주권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 구조가 아니다. 동맹국 영토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집단방위체제를 지탱해 온 전제였다.

이 점에서 “무력은 쓰지 않겠다”라는 발언은 안정을 보장하기보다 오히려 불신을 증폭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힘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평화적 의도를 강조하는 언어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를 암시한다. 그 결과 군사적 상상력은 자극되고, 동맹 내부에서는 주권이 어디까지 보호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진다. 더 나아가 이 사안이 관세, 안보분담, 다른 지정학적 현안과 묶여 거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문제를 동맹 규칙의 위기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린란드 논란은 안보 사안으로 출발했지만 곧 유럽의 경제와 국제법적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이를 강압의 문제로 규정하며 EU 차원의 대응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 관세부과, 법적조치, 제도적 압박을 포함한 반 강압카드가 거론되면서 안보문제는 통상과 국제법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그린란드에 가격을 매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까지 제기되며 국가와 영토는 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다는 국제법적 원칙이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그린란드 내부 정치의 역설도 드러났다. 그동안 그린란드는 덴마크로부터의 점진적 자치 확대와 독립을 논의해왔다. 그러나 갑작스레 발생한 외부 압박은 독립을 가속하기보다 오히려 독립 관련 논의를 봉인하고 자치와 주권을 방어하는 방향으로 여론이 결집했다. 여기에 상징외교, 여론전을 둘러싼 마찰음이 발생하며 논의 초점은 정책협의가 아닌 정치적 귀속과 외부개입의 한계를 둘러싼 신뢰문제로 확장됐다.

트럼프의 언어를 가볍게 봐서 안될 이유

이러한 그린란드 논란은 지리적 거리만 놓고 보면 아시아 지역과 별개의 사안처럼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이 사안에서 주목할 연결점은 규범과 선례의 문제에 있다. 강대국이 동맹국이나 자치지역을 향해 ‘통제’와 ‘소유’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이는 국제질서 전반에 신호가 전달된다.

현상유지를 둘러싼 긴장이 반복돼 온 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러한 신호를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다.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처럼 영토문제 하나가 곧 군사충돌과 동맹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역에서는 언어의 변화 자체가 군사적 의도, 개입 범위, 향후 행동에 대한 신호로 받아들여져서다.

또 하나의 연결점은 동맹신뢰의 연쇄효과다. 유럽에서 동맹 내부 규칙이 흔들리면 그 파장은 미국의 아시아 동맹 체제 전반으로 파급된다. 아시아의 다자안보협력은 명문화되지는 않았지만 동맹국의 주권을 협상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형성돼 왔다. 외부위협에 대한 공동대응과 지역 질서 유지의 정치적 정당성은 모두 이 전제 위에 서 있다. 이 전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두축 모두 흔들린다.

한국에게는 정책의 선택 문제로 다가와

한국 역시 이 논란이 던지는 질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국은 미국을 핵심 동맹으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동맹 내부 요구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노출된 국가 중 하나다. 이미 주둔과 협력이 굳어진 상황에서 협력의 언어가 통제와 조건의 언어로 바뀔 때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한국이 떠안게 된다. 미국이 최근 방위비 분담과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대중국 수출 통제를 연계해 동맹국의 ‘기여’를 강조하는 과정은 이러한 변화를 명확히 드러낸다. 그린란드 사례가 주는 함의는 정치적 메시지 하나가 동맹의 성격을 재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보논쟁이 통상과 외교 판단에 이르기까지 미치는 영향도 또 하나의 쟁점이다. 그린란드 논란은 한국이 처한 구조적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은 안보에서 미국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경제에서는 중국과 깊이 얽혀 있다. 동맹 내부의 압박이 통상문제로 옮겨가면 외교적 수사 하나가 산업과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동맹에 대한 신뢰와 자율성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이제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 정책 선택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서강대 BK21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