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재정지배 시대의 투자전략

2026-01-27 13:00:01 게재

지난해 12월 열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시장의 관심을 끈 것은 금리인하보다 ‘준비금 관리 매입(RMP, Reserve Management Purchases)’이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은행의 지급준비금을 관리하기 위해 12월 12일부터 월 400억달러 규모로 단기국채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3년 반 동안 이어진 양적긴축(QT)을 종료하고 사실상 대차대조표를 확대시키는 국면으로 돌아섰음을 공식화한 조치다.

연준의 논리는 분명하다. 양적완화(QE)는 장기채를 매입해 장기금리를 낮추는 경기 부양 정책이지만, RMP는 단기채를 매입해 은행 시스템의 준비금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관리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QT 종료 직후 단기채 매입을 재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통화환경은 구조적으로 달라진다. 대차대조표가 다시 확장궤도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RMP는 기술적 조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미 재무부 단기채 발행 늘리고, 연준은 그 단기채 매입

이번 RMP는 시점과 규모에서 시장 예상을 뛰어넘었다. QT와 재무부의 대규모 단기채 발행이 맞물리며 유동성이 특정 구간에서 급격히 경직됐다. 지난해 10월 31일에는 연준이 국채를 담보로 하루짜리 달러를 빌려주는 스탠딩레포(SRF, Standing Repo Facility) 입찰에 503억5000만달러의 수요가 몰렸다. SRF 도입 이후 최고치다. 게다가 초단기 기준금리는 정책금리 범위를 벗어나기까지 했다. 이는 통화량이 늘고 있음에도 유동성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배관문제’를 낳았다.

연준이 서둘러 RMP를 단행한 배경에는 이른바 ‘레포칼립스(Repo-calypse)’에 대한 학습효과가 깔려 있다. 레포칼립스는 2019년 9월 16일 레포금리(Repo Rate, 국채 담보 1~7일짜리 금리)가 하루 만에 2%대에서 10%대로 폭등한 사건을 의미한다. 당시 법인세 납부와 대규모 국채 발행 결제가 겹치면서 은행에서 준비금이 일시에 빠져나갔다. 단기자금이 품귀를 겪으며 금리가 뛴 결과다. 결국 연준은 2019년 10월 RMP를 단행했다. 월 600억달러씩 6개월 간 3600억달러 규모를 매입했다.

눈여겨볼 점은 그때도 파월 의장은 단기채 매입을 시작하며 “QE가 아니다. 적정한 수준의 준비금을 유지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후 코로나 위기가 닥치자 RMP는 자연스럽게 QE로 확장됐다. 이러한 전례 때문에 시장은 이번 RMP 역시 ‘정책의 연속선’으로 해석한다.

연준이 QE라는 표현을 극도로 경계하는 데는 이유가 명확하다. QE는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즉 재정지배(Fiscal Dominance) 논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대규모로 보유하는 구조가 고착되면 정부는 재정 규율을 잃기 쉽다. 국채 발행에 대한 시장의 징계가 약해지고 인플레이션 리스크는 중장기적으로 커진다. 동시에 중앙은행은 국채 이자 비용 때문에 금리 정책에서 정치적 압박을 받는 존재로 전락한다.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의 하위 수단으로 밀려나는 순간이다.

현재 미 재무부는 장기금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단기채 발행을 늘리고 연준은 그 단기채를 매입한다. 이는 정책 공조가 아니라 사실상 기능적 결합이다. 시장이 소화하기 어려운 국채를 중앙은행이 흡수하는 구조는 재정 지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미 재무부는 연준만 압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레포시장과 국채시장에서 위축된 민간은행의 역할을 회복하기 위한 규제 완화도 추진하고 있다. 위기 때마다 정부도 시장도 연준만 바라보는 기형적인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질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다.

현실 외면한 투자전략은 값비싼 대가 치를 수 있어

재정지배의 시대가 다가오면서 자산배분의 조건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인 주식 60%/채권 40% 투자전략이 진화하고 있다. 남발되는 미 국채의 역할이 약화되어야 함에도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의 ‘상대적 우위’ 때문이다. 주식·원자재·금·실물자산·디지털자산은 화폐가치 희석국면에서 상대적 방어력을 갖는다. 최근엔 미국의 그린란드 압박까지 겹쳐 금·은·구리·희귀금속 등이 초강세다. 현재 시장이 선호하는 포트폴리오는 주식/채권/실물·대체자산 투자비율이 40/30/30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일론 머스크 등 기술기업 CEO들은 인공지능과 기술발전이 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통해 디플레이션 압력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효과가 재정지배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충분히 상쇄시킨다는 것을 입증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현실을 외면한 투자전략은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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