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AI 전환기, 판단주권과 리더십

2026-01-28 13:00:01 게재

AI 전환기는 과거의 기술 경쟁과 게임의 법칙이 다르다. 이전에는 누가 더 좋은 기술과 제품을 만드느냐가 승부였다면, 이제는 누가 사회와 산업의 ‘기본 판단값(default)’을 제공하느냐가 경쟁의 핵심이 된다. 대출·채용·의료·행정·추천 시스템에서 AI가 산출한 결과가 기본값이 되는 순간, 판단은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사회 곳곳에 내장된 구조가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가 최종 결재를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준과 AI 모델이 결정을 미리 형성했느냐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AI 전환기에 대응하고 있다. AI 기본법 제정과 시행령 마련, 국가 AI 컴퓨팅 인프라 구축, ‘AI 3대 강국’ 비전과 국대 AI 프로젝트까지, 여러 가지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지만 다음 단계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더 정교하게 설계할 것인가 대해서는 아직 불분명하다.

네이버·카카오·NC AI의 국대 AI 선발전 재도전 포기는 전략적 판단

이러한 변화에 산업계는 전략적 대응에 분주하다. AI는 데이터·연산·모델·인재가 동시에 결합돼야 작동하는 시스템형 기술이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도 중요하다. 하지만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실패비용을 고려하면, 한국 AI 기업들이 미국 빅테크와 동일한 경로로 따라가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업들은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카카오·NC AI가 국대 AI 선발전 재도전을 포기한 것은 미국 빅테크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판단, 그리고 ‘국가 대표 모델’ 경쟁이 자사의 장기 사업과 맞지 않는다는 현실적 판단에 가깝다. 기업은 소버린 AI를 기술 순혈주의가 아니라 사업과 책임의 문제로 재해석하고 있는데, 정책설계는 그 변화 속도를 아직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 환경은 분명하다. EU는 기술과 플랫폼에서는 열세지만 거대한 단일시장을 협상력으로 삼아 2024년 발효된 AI Act로 외국 AI가 유럽 사회에 들어오는 방식을 규칙으로 조정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플랫폼이 판단 기준을 장악하고 있기에 시장 중심 전략을 유지한다. 중국은 통제국가로서 국가가 판단과 실행을 직접 관리하면서 대안적 AI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전략적 우위가 없기 때문에 더 정교한 다음 단계 전략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최근 한국의 정보통신망법 개정과 이에 대한 미국의 공개적 반대는 매우 시사적이다. 이는 단순한 규제 갈등을 넘어 누가 사회의 판단 기준을 정하고 그 책임을 지는가를 둘러싼 충돌이다. AI로 갈수록 이러한 갈등은 더 깊어질 것이다.

여기서 AI 기본법과 시행령의 의미가 드러난다. 현행 법과 시행령은 필요한 권한을 열어두는 데까지는 도달했다. 하지만 어디까지 판단을 자동화해도 되는지, 어떤 판단은 반드시 인간과 제도로 되돌려야 하는지를 운영 원칙으로 강제하는 구조는 아직 남아 있다. 이는 정부가 몰라서가 아니라, AI의 파급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판단 구조를 선제적으로 고정하는 데 따르는 정책적 부담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한국정부가 해야 할 다음 단계 전략이다. 즉 대한한국의 국가 AI전략은 기술 추격을 넘어, 외국 AI가 한국 사회의 판단 기본값을 직접 형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으로 진화해야 한다. 공공·금융·의료·채용·행정 등 핵심 영역에서는 AI의 출력은 참고 의견에 머물고, 최종 결정은 한국의 법과 책임 체계를 한 번 더 통과하도록 만드는 ‘판단 관문’이 필요하다. 이는 기술을 제한하는 규제가 아니라, 판단과 책임의 귀속을 명확히 하는 국가 설계이다.

국가 AI전략은 기술 추격 넘어 판단과 책임의 귀속 명확히 하는 설계여야

AI 전환기 지도자의 리더십은 기술을 더 알고, 고르는 리더십을 넘어서 한국 사회의 판단이 외부 기술의 기본값으로 자동 고정되지 않도록 구조를 설계하고 지켜내도록 하는 능력이다. 정부가 이미 쌓아온 정책의 토대 위에서, 이러한 설계가 더해질 때 한국의 AI 전략은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다.

조현대 기술경영경제학회 명예회장